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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20년, 킬러 문항 만들다 내가 킬?

by 오이랑

지필고사 출제는 하나의 작은 건축물을 짓는 일과 같다. 나는 그 건축물의 유일한 설계자다. 점수 분포를 고려하며 난이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문항 하나하나에 고민을 담는다. ‘이것은 그야말로 킬러를 위한 킬러 문항!’이라며 회심의 미소를 짓게 되는 심화 개념의 고난도 문제부터, 공부한 보람을 느끼게 할 든든한 중상 난이도, ‘이만하면 해볼 만하지?’ 하며 학생의 등을 토닥여줄 중하 난이도, 그리고 ‘이건 거저 주는 문제야!’ 미소 짓게 할 서비스 문항까지. 각 단원의 어느 개념에서 어떤 역할을 맡길지 밑그림을 그리고서야 비로소 출제를 시작한다.


수능의 옷을 입히되, 나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한두 문제 녹여내는 실험을 감행하고, 때로는 학력고사 시절의 낡은 유물 같은 문제를 감초처럼 끼워 넣는 장난기도 잊지 않는다. 내가 이 과목의 유일한 담당 교사이기에, 출제와 검토, 그리고 책임까지 온전히 나의 몫이다. 수업과 평가를 내 방식대로 운영하는 자유는 더없이 만족스럽지만, 그 자유의 무게는 지필 원안을 들고 있을 때 가장 크게 느껴진다. 내 실수를 발견해 줄 동료 한 명이 간절해지는 순간이다.


그 간절함은 집요함이 된다. 혹여 과거의 내 문제를 복제하지는 않았는지, 오타는 없는지, 엄밀한 철학 개념의 조사 하나, 주술어의 호응까지 수없이 되짚는다. 고등학교 시절 윤리와는 담쌓고 지냈을 이과 남편을 앉혀놓고 낯선 사상가들의 향연을 풀게 하는 건 연례행사다. 문항의 배열이 다음 문제의 힌트가 되지는 않는지, 편집은 가독성이 좋은지, 마지막 순간까지 의심하고 또 의심한다. 그 지독한 애씀 덕이었을까, 지금까지 나의 교직 생활에서 단 한 번도 출제 오류는 없었다. 내가 지은 작은 건축물은 늘 굳건했다.


올해 2학기 1차 지필평가 전까지는.


시험이 끝난 후였다. 평소 자신을 ‘윤리 왕자’라 불러달라던 J를 필두로 몇몇 아이가 교무실 옆 빈 교실로 나를 찾아왔다. 그 해맑은 얼굴들을 보는 순간, 나는 뭔가 심상치 않은 상황이 벌어졌음을 감지했다.


“선생님~ 보세요~ 이 문제가~”


J가 시험지를 펼치며 말을 꺼내는 그 찰나, 나의 시선은 정확히 그 문항의 <보기>에 꽂혔다. 갑, 을, 병 사상가의 입장을 고르는 문제. 머릿속에서 선지들이 빠르게 분해되고 재조립되었다. 그리고 단 몇 초 만에, 하나의 명확한 결론이 스쳤다.


답이 없다.


내가 지은 건축물의 단단함에 선명한 균열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아이들의 다음 말을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어이쿠! 이거 문제가 잘못됐네!”


내 입에서 나온 즉각적인 반응에, J와 친구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웅성거림 속에 놀라움이 섞여 있었다. 내가 바로 문제 오류를 인정하며 정답이 없다고 말하자, J가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샘, 인정이 엄청 빠르시네요~!”


그 한마디가 내 안의 무언가를 ‘툭’ 하고 건드렸다.


틀렸는데 어찌하겠는가. 우겨봐야 틀린 것은 맞는 것이 되지 않는다. 나는 아이들에게 그 오류 문항은 삭제 처리될 것이며, 해당 배점만큼을 제외한 점수가 만점이 될 것이니, 다른 반 친구들에게도 전해달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빈 교실을 나가자,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뿐해졌다. 보통 시험이 끝나면 느끼는 후련함과는 다른 종류의, 상쾌한 홀가분함이었다.


몇 년 전, 자신의 출제 오류에 대한 학생의 이의 제기를 어설픈 논리로 덮으려던 동료의 모습에 비위가 상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실수를 대하는 태도가 그 사람의 품을 보여준다. 내가 추구했던 것은 흠결 없는 완벽함이 아니라, 학생들 앞에 떳떳하고자 하는 성실함이었다. 그 성실함에 생긴 균열을 정직하게 마주하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인정이 빠르시네요.’


학생의 그 한마디는 나의 건축물에 생긴 균열을 부끄러운 흠집이 아닌, 새로운 가능성으로 바꿔놓았다. 깨진 그릇의 갈라진 선을 옻과 금가루로 메워 세상에 하나뿐인 무늬로 거듭나게 하는 ‘킨츠키’처럼, 어쩌면 나의 이 균열 또한 무언가로 채워져 더 단단하고 아름다워질 수 있지 않을까. 그 틈을 메우는 것은 완벽함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바로 ‘솔직함’과 ‘신뢰’, 그리고 실수를 통해 교사와 학생이 함께 성장하는 ‘교육적 순간’ 일 것이다.


학생의 그 말은 나의 갈라진 선 위에 반짝이는 금가루를 뿌려준 것만 같았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은 듯, 마음이 참 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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