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한 지난 어느 추운 날,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위하여>라는 책을 대전의 어느 서점에서 읽고 운 적이 있다.
병원에서는 내가 조현병에 걸렸다는 것만 알려줄 뿐, 처방약은 주지만 이 병이 정확히 어떤 병인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알려주지는 않는다.
지금처럼 카페가 활성화되어 필요한 사람끼리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정신질환에 대한 지식을 얻고 약을 먹고 하는 모든 것들은, 당시만 해도 고립된 성 안에서 의구심과 두려움 속에서 상당한 인내를 감내해 가면서 삶과 부딪치면서 얻는 영역이었다.
삶 자체가 본질적으로 사람들 사이에 있는 섬처럼 고독하다고 하듯이 이 병도 마찬가지겠지만, 타인의 오해와 편견과 싸운다는 측면에서, 자신을 지지해 주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에서 더 고독할지 모른다.
갓 푸른 새내기가 되어 스무 살 겨울에 우연히 읽은 이 책은 정신질환에 대한 많은 것을 알게 해 주었다. 당시 읽었던 책의 거의 대부분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글 말미 작가의 후기에 나오는 이 구절.
<정신질환자는 가장 약한 사람들이다 마음이 따뜻하고 순수해서 타인을 공격을 해야 할 때마저도 자기 지신을 공격하여 무너지는 사람들이다.>
이를 읽고 책방에서 한참 울었던 기억이 있다
아, 이 사람이 잘 알고 있구나. 주변에는 내가 괴물로 보일지도 모르는데 이 사람은 정확히 나를 아는구나" 하는 생각에 저절로 눈물이 나왔다.
고마움이었다. 위로였고 힘이었다. 열아홉 학창 시절에 얻은 이 병은 그 후의 삶을 좌우하는 큰 분수령이 되었고 그로 인해 많은 것을 잃고 현재도 고달픈 삶을 살고 있지만, 긴 삶의 시간을 통과하고 난 지금 생각해 보면, 오히려 그로 인해 삶에서 배운 축복을 생각하면 감사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재일한국인 교수 강상중 님이 쓴 책 <살아야 하는 이유> 에는 사람은 크게 <긍정적인 정신>과 <병든 영혼>으로 대별된다고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병든 영혼은 자연과 삼라만상에 담긴 작은 몸짓 하나하나를 이해하는 근원적인 시각과 태도를 가리킴으로 이해한다. 이는 곧 예술가로서의 길로 당사자를 초대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병든 영혼으로 사는 축복을 오랜 세월을 통과하고 나니, 이제는 이 질병으로 인해 여러 가지 감사할 만한 일들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그중 하나는 이로 인해 글을 쓸 만큼 충분한 경험치가 생겼다는 것이다.
섬망증세로 입원했던 19세 이후 당시의 병명은 조현병(당시에는 정신분열증)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에서 양극성 정동장애로 수정되었다. 조울병과 수많은 시간을 지내왔기 때문에 이제는 살아온 경력과 경험의 나눔을 통해, 예전에 읽었던 그 책의 따뜻한 위로처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는 생각으로 이 글을 시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