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은 가장 원초적이고 역사가 깊은 설득이고 표현이라고 생각됩니다. 말과 언어가 있기 전에는 육체적인 힘을 겨루는 것이 곧 토론이며 의사결정을 위한 유일한 수단이었을 것으로 보이니까요. 그 말을 달리 해석하자면 나를 표현하고 내 의지를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액션 영화를 보면서 대리 만족을 느끼는 이유도 폭력이 가지고 있는 일종의 카타르시스 때문이리라 추측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최근 ‘묻지마 폭행’이라는 일종의 강력 범죄가 종종 기사화되고 있습니다.
아무런 이유도 특정 대상도 없이 무차별적인 폭행을 일삼는 행위를 ‘묻지마 폭행’이라고 합니다. 왜 ‘묻지마 폭행’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대충 짐작은 되지만 사실 과연 그들은 그들에게 이유를 묻지 않길 바라면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해를 가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큰 결심이 필요합니다. 우선은 자신도 반격당할 수 있다는 동물적인 두려움을 물론이고, 법의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고 있으니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형벌로 갚아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지나가는 사람을 그리 쉽게 공격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아무리 화가 나고 짜증이 나는 상황일지라도 말이죠.
연이은 사건을 마주하며 나 혹은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도 언제 어디서든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평생을 선하게 살아왔든, 치료가 불가능한 지병을 앓고 있든, 노약자라는 조건은 아무런 방어막이 되지 않습니다. 그냥 그 시간에 그 장소에 그와 함께 있다면 그저 당하게 되는 것일 뿐이니까요.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런 끔찍하고 어이없는 짓을 저지르는 것일까요?
스스로 대한 그리고 사회에 대한 적대감과 혐오의 표출이라 생각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 역시 불평,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폭력이라는 형태로 해소하지는 않죠. 자제력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자기 자신을 통제하지 못할 만큼 큰 스트레스에 놓여있거나, 비교적 작은 자극에도 크게 반응하는 감정적 체질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것을 해소하기 위한 어떠한 방법이라도 선택하게 되겠죠. 그리고 사회가 병들어 있으니 그 안에 속한 인간들 역시 건강할 리 만무합니다. 아주 작은 일이 트리거로 작용하여 주변 사람에게 총알을 박게 되는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묻지마’라는 수식어가 붙긴 했지만 어쩌면 그들은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1인 시위를 함에 있어서 폭력이라는 도구를 이용하다 보니 그 배경에 귀를 기울이기 힘들 뿐. 탈출구가 없이 끓어오르다 보니 주먹질과 발길질을 통해 살려달라고 외치는 중은 아닐까요? 물론 폭력은 어떤 상황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다면 세상 그 누구도 그 목소리를 듣기 위해 다가서지 못할 것이 뻔하지만요.
마땅히 예측할 방법이 없으니, 대부분 터지고 나서 수습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 더 풀기 어려운 숙제라 여겨집니다. 더불어 이런 일들이 앞으로 더 높은 빈도로 나타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인간에 대한 두려움이 차차 커지는 중이고요.
예측이 힘드니 예방이라도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데 그 마저도 획기적인 방법은 보이지 않습니다.
폭력의 심각성과 부작용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거나, 대화와 상호 이해를 통해 갈등을 해소하면 된다는 다소 뻔 한 방법이 떠오르긴 하지만 실효성에 의문이 듭니다. 더불어 법적 처벌 강화를 외쳐봤자 그 역시도 그간 심신 미약 등으로 분류되어 솜방망이 판결이 내려진 사례를 보면 기대감을 갖기 어렵고요.
결국 내 몸은 내가 지키고, 매 순간 주위를 살피며 수상해 보이는 사람은 의심하고 피하는 방법 밖에 없는 것일까요? 안전을 위해 스스로 주변에 울타리를 치면서 말입니다. 그나마 총기 규제가 엄격한 나라라서 다행이란 생각도 듭니다.
날이 무덥습니다. 앞으로 지구는 더 뜨거워진다고 합니다. 걱정입니다. 폭발하는 인간들이 더 늘어날까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