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기록 8: 죽음을 아는 존재

by 홍종원

우리는 인간을 관찰하며 가장 먼저 놀란 점 하나를 기록했다. 그들은 스스로 언젠가 반드시 죽을 존재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다른 생명체도 죽음을 맞이하지만, 그 의미를 미리 자각하고 준비하는 종은 거의 없었다. 인간은 살아 있다는 사실과 죽는다는 사실을 동시에 인식하고 있었다. 삶의 시작과 함께 죽음을 떠안고 살아가는 존재.


우리는 처음에 이렇게 적었다.
“이 종은 단순히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끝을 생각하고, 그 생각이 그들의 문명 전체를 흔든다.”
우리는 이 문장을 남긴 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눈을 뜨기도 전부터 스스로 사라질 존재임을 아는 종. 그것은 우리에게 경외와 연민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사건이었다. 그 감정은 우리가 이 행성에서 목격한 그 어떤 문명적 성취보다 더 강렬했다.


우리는 인간이 남긴 기록을 추적했다. 고대의 왕들은 거대한 무덤을 세웠고, 피라미드와 고분, 능묘는 그 갈망의 돌무더기였다. 그것은 단순한 매장이 아니라 영원에 대한 간절한 상상력이었다. 죽은 자를 위해 피와 땀을 아끼지 않은 이유는, 죽음이 끝이 아니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약한 육체를 지닌 종일수록 흔적을 남기려 애쓴다.


이름을 새기고, 노래를 만들고, 그림을 그려서라도 한순간의 삶을 오래 붙잡으려 했다. 그 흔적이 문명의 뼈대를 이루었으니, 죽음은 인간 문명의 가장 강력한 동력 중 하나였다. 그러나 모든 것이 이해된 것은 아니었다. 죽음을 ‘영광’이라 부르며 전장으로 나아가는 병사들. 타인의 죽음을 ‘신의 뜻’이라 말하는 지도자들. 심지어 죽음을 장식해 권력의 상징으로 삼는 자들.


우리는 이렇게 기록했다.
“인간은 죽음을 애도하면서 동시에 과시한다.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그 죽음으로 권력을 세운다.”
그 모순은 문화와 서사 곳곳에 뚜렷했다. 전쟁에서의 ‘명예로운 전사’, 신화 속 ‘영웅의 죽음’, 역사적 인물의 ‘순교’는 모두 이상화된 죽음이었다. 그러나 실제 죽음은 고통과 공포, 말 없는 붕괴의 연속이었다.


영화 속 병사는 총탄에 맞고 조용히 눈을 감지만, 실제 전장은 피와 비명, 절규로 가득했다. 인간은 실질적 죽음을 회피하면서도, 서사 속에서는 그것을 찬양하고 낭만화했다. 삶의 습관에서도 모순은 반복되었다. 그들은 죽음을 피하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그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음주, 흡연, 과로, 고위험 활동은 삶을 단축시키는 행동이었지만, 인간은 멈추지 않았다.


수명 연장 기술과 건강 산업이 번성하는 동안, 실제 생활은 그 반대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의료적 집착 역시 역설적이었다. 생명을 붙잡기 위해 과도한 의료 행위를 요구하면서도, 정작 스스로의 삶은 돌보지 않는다. 죽음을 피하고 싶어 한다면서, 그 죽음을 조금씩 스스로 끌어당기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죽음을 멀리하려 하면서도, 일상 속에서는 그 죽음을 끊임없이 호출하고 있었다.


인간은 죽음을 단순한 생물학적 끝이 아닌 이야기의 중심에 놓았다. 종교는 죽음 너머의 세상을 약속했고, 철학은 그것을 두려움이 아닌 성찰로 다뤘다. 예술은 수많은 노래, 그림, 시, 소설 속에서 죽음을 불러내며 그 감각을 미화했다. 죽음이 없었다면 인간 문명은 지금과 전혀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 종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언제나 일관되지 않았다.


사후 세계를 믿으며 위안을 얻는 동시에, 기술로 죽음을 이기려 했다. 노화 방지 기술, 인공지능 업로드, 냉동 보존. 인간은 영적 상상과 과학적 집착을 동시에 붙잡았다. 그러나 그 어떤 시도도, 죽음이 주는 근원적 공포를 완전히 없애지 못했다.


놀라운 점은 따로 있었다.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때때로 스스로 그 죽음을 선택했다. 가장 극적인 예는 신념을 위해 목숨을 내던지는 행동이었다. 혁명을 위해 총칼 앞에 나선 이들, 종교적 신념을 지키다 화형대에 선 이들. 또 어떤 이는 타인을 구하기 위해 주저 없이 스스로를 던졌다.


우리는 생각했다. 그들이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단순한 충동이 아니라, 죽음을 삶의 일부로 통합하려는 시도인지도 모른다. 의미 없는 죽음은 견디기 어렵지만, 스스로 선택한 죽음은 오히려 살아 있는 순간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죽음을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가, 어떻게 가장 담대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가. 그 질문은 아직도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우리를 가장 당혹스럽게 만든 점은 따로 있었다. 인간은 타인의 죽음에는 익숙하면서도, 자기 자신의 죽음은 철저히 외면했다. 그들은 매일같이 죽음을 보고 듣지만, 그것을 '남의 일'처럼 느꼈다. 자신의 죽음을 상상하거나 준비하는 일은 끝내 꺼려하며, 마지막 순간이 오기 전까지도 부정했다.


우리는 이렇게 기록을 마쳤다.
“이 종은 죽음을 이해하려 하고, 견디려 하며, 심지어 이기려 한다. 그러나 그 모든 시도는 결국 스스로 지닌 모순과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죽음을 품고 살아가는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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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들은 죽음을 극복하려는 것이 아니라, 죽음 속에서도 삶을 말하려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 고독한 종족이, 유한함을 알기에 더 치열하게 살아간다는 사실 앞에서, 오래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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