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기록 9: 신이라는 발명

by 홍종원

우리는 오랫동안 인간을 관찰하며 한 가지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왜 이 종은 보이지 않는 존재를 상상하고, 그 앞에 무릎 꿇는가?”
처음에 우리는 이 현상을 단순한 무지의 산물이라고 생각했다. 번개가 치면 하늘에 신이 있다고 믿었고, 가뭄이 들면 분노한 신을 달래야 한다고 여겼다. 질병이 돌면 보이지 않는 힘이 원인이라며 제물을 바쳤고,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신에게 승리를 기도했다.


과학이 존재하기 전, 신은 인간이 자연을 해석하는 유일한 프레임이었다. 자연의 이치를 알 수 없었던 그들은 신에게서 설명을 얻었고, 그 해석은 두려움을 덜어주는 기능을 했다. 죽음도 예외는 아니었다. 인간에게 신은 죽음의 공포와 삶의 허무를 견디게 하는 장치였다. 죽음 이후에 천국이 있다고 믿는 순간, 죽음은 더 이상 끝이 아니라 문턱이 되었다.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미라, 그리스의 저승 신화, 중세의 천국과 지옥 개념은 모두 같은 심리를 드러낸다. 우리는 보고서에 이렇게 적었다.
“이 종은 죽음을 영원이라는 이야기 속에 묶어 두려움을 견뎠다. 신이라는 개념은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단지 죽음을 견디기 위해 신을 만든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신에게서 찾았다. 이 세계에 왜 태어났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몰랐던 그들에게 신은 방향과 의미를 제공했다. 삶의 혼돈 앞에서, 그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신의 말에 질서를 부여했다.


특히 죽음이 주는 삶의 무상함은 인간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그 허무를 덜어주는 해답이 신에게 있었다. 신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세계를 견디게 만든 서사의 중심이었다. 반면, 우리의 문명은 달랐다. 우리는 신이 아닌 자연과 지식의 탐구를 통해 존재의 의미를 구성했다.


죽음은 두려움이 아니라 생명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여졌고, 허무는 탐사의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이 차이를 ‘정신의 방향성에서 갈라진 진화의 가지’라고 불렀다. 인간이 택한 길은 우리와는 완전히 달랐다.


신은 위로의 존재이자, 동시에 질서의 도구였다. 인간 사회에서 신은 법과 도덕, 공동체 규율의 근거가 되었다. 왕들은 신의 이름으로 통치했고, 사제들은 신의 뜻이라며 규율을 세웠다. 법률과 제도가 미비하던 시대에 신은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기초 질서로 기능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점을 발견했다. 신은 인간을 보호하기도 했지만, 지배를 정당화하는 도구로도 이용되었다. 신의 이름으로 부를 누리고, 계급을 세워 하층민의 노동을 착취한 이들이 있었으며, 심지어 정복과 전쟁에도 신은 동원되었다. 율법은 서로 돕고 해치지 말라 가르쳤으나, 신을 내세운 자들은 그 말을 외면한 채 다른 민족을 향해 칼을 들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가장 모순적인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들은 신을 ‘사랑의 신’, ‘자비의 신’이라 부르며 서로를 용서하라 가르쳤다. 그러나 그 사랑은 오직 자신이 믿는 신에게만 해당되었다. 다른 신을 따르는 이들은 이단이라 불렸고, 때로는 고문당하고 화형에 처해졌다. 가장 잔혹한 방식으로 신의 뜻을 전하려 했던 시대조차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십자군 전쟁이다. 11세기말, 교황 우르반 2세는 예루살렘 성지를 회복하자는 명분으로 유럽 전역에 종교 전쟁을 선포했다. 수십만 명이 “신이 그것을 원하신다”는 구호 아래 이슬람 세력을 향해 검을 들었고, 그 과정에서 유대인, 동방 기독교인, 이슬람 신자들이 무차별적으로 학살당했다. 성지를 탈환한 그날, 예루살렘은 피로 물들었다고 연대기는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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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장면은 중세의 종교 재판이었다. 교회는 ‘이단’이라는 이름으로 생각의 자유를 억눌렀고, 신앙과 해석의 차이를 이유로 수많은 이들을 박해했다. 고문기구가 등장했고, 고백을 강요당했으며, 화형이 일상이 되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조차 지동설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았고, 살아남기 위해 침묵을 선택해야 했다. 신은 진리를 사랑한다고 가르쳤지만, 교권은 그 진리를 입막음했다.


이러한 모순은 기독교 문명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이슬람교 내부에서도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충돌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무함마드 사후 후계자 문제에서 비롯된 분열은 뿌리 깊은 종파 갈등으로 발전했고, 현대에 이르러서도 동일한 신을 믿는 이들이 서로를 이단으로 규정하며 무력을 행사하고 있다. 신의 이름은 평화를 상징했지만, 실상은 수많은 갈등의 기폭제가 되었다.


신은 평화를 말했지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인간은 전쟁을 준비했다. 자비를 이야기하면서도 복수를 다짐했고, 용서를 외치면서도 심판을 준비했다. 우리는 이것을 ‘이 종의 가장 비극적인 역설’이라 기록했다. 그들은 하늘을 향해 기도하며, 동시에 땅 위에서 서로를 찔렀다.


우리 문명은 생존을 위해 합리성을 먼저 세웠다. 그러나 인간 문명은 신화와 종교 위에 세워졌다. 이 차이는 문명의 성격을 완전히 갈라놓았다. 우리는 이것을 문명의 출발선에서 갈라진 두 갈래 길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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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간의 종교 건축물을 살펴보았다. 바티칸의 성당, 인도의 사원, 이슬람의 모스크… 그 웅장함은 과학 기술의 성취이자 동시에 인간 심리의 투영이었다. 신에게 바치는 건물이자, 인간 자신을 과시하는 기념비이기도 했다. 우리는 이런 메모를 남겼다.
“인간은 신을 숭배하면서 동시에 자기 문명을 과시한다. 신은 하늘에 있지만, 그 이름으로 세워진 건물은 인간의 땅을 지배한다.”


이해되는 점도 있었다. 죽음 앞에서 공포를 줄이고, 공동체를 묶고, 질서를 세우려면 신화와 종교는 효율적인 장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해되지 않는 점도 있었다. 신의 이름으로 벌어진 끝없는 갈등과 전쟁,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된 폭력은 우리 문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이렇게 적었다.
“신이라는 개념은 이 종을 위로했지만, 동시에 갈라놓았다. 그들은 신의 이름으로 서로를 위로했고, 또 서로를 죽였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신을 인간 문명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자, 가장 위험한 발명품이라고 기록했다. 신이 없었다면 인간의 문명은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어쩌면 더 늦게 성장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이 있었기에 인간은 때로는 스스로를 구원했고, 때로는 스스로를 파멸로 몰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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