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기록 10: 전쟁이라는 충돌

by 홍종원

우리는 인간 문명을 오랫동안 관찰하며 한 가지 사실에 주목했다. 이 종은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과 더 자주 싸웠다. 땅을 차지하기 위해, 신의 이름으로, 혹은 권력을 쥐기 위한 야망으로 그들은 스스로를 공격했다. 그들의 역사는 왕과 왕, 민족과 민족, 이념과 이념이 충돌하는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마치 갈등이 문명의 연료라도 되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보고서에 이렇게 적었다.
“인간 문명은 피와 불길 속에서 전진했다. 그들의 전쟁은 파괴이자 동시에 문명의 가속 장치였다.”


우리 문명에서는 전쟁이 오래전에 사라졌다. 혹독한 환경은 협력을 생존의 전제로 만들었고, 감정은 통제의 대상이 되었다. 우리는 내부 충돌보다 외부 재해에 집중해야 했기에, 파괴보다 공존을 선택했다. 그러나 인간은 자원이 풍부한 행성에서도 끊임없이 충돌했다. 문명이 커질수록 싸움의 범위도 함께 확장되었다.


그들의 행태는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이성적 존재’라 자칭하면서도, 탐욕과 감정에 의해 문명을 불태우는 일이 반복되었다. 전쟁을 멈추기 위해 더 큰 전쟁을 벌였고, 평화를 명분으로 생명을 앗아갔다. 우리는 이 구조를 ‘문명의 아이러니’라 정의했다.


평화를 원한다는 그들의 외침은 결국 더 강한 무기를 만드는 데 쓰였다. 그리고 그 무기는 다시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특히 인간이 ‘20세기 초’라 부르는 시기, 이들은 두 차례에 걸쳐 전례 없는 규모의 전쟁을 겪었다. 그들은 이를 ‘세계대전’이라 명명했고, 수천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1차 세계대전은 제국주의 국가 간의 경쟁, 산업화된 군사력, 그리고 복잡한 동맹 체계가 한 암살 사건을 계기로 폭발하며 시작되었다. 평화를 위해 맺은 동맹이 오히려 파국을 부른 사례였다.


2차 세계대전은 1차 대전의 폐허 위에 쌓였다. 경제 대공황, 패전국에 대한 보복적 조약, 그리고 인종주의와 전체주의의 결합이 새로운 대참사를 만들었다. 전쟁은 더욱 커졌고, 문명은 다시금 자신을 향해 칼을 들었다.


우리는 그 모든 장면을 위성 너머에서 기록했다.
“이 종은 평화를 위해 동맹을 맺었고, 그 동맹은 전쟁으로 이어졌다.
그들은 독재에 맞섰지만, 스스로도 전시 체제 속에서 전체주의의 유혹을 떨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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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전쟁은 문명을 폐허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국제 질서와 기술의 전환점이 되었다. 하지만 그 대가는 막대했다. 인간은 핵무기를 만들었고, 이 행성은 단 하나의 오판으로도 자멸할 수 있는 구조를 갖게 되었다.


우리는 전쟁이 남긴 흔적을 조사했다. 폐허가 된 도시, 불타버린 농지, 사라진 왕조들. 그러나 이상한 점은, 전쟁이 단지 파괴만을 남기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전쟁은 오히려 새로운 기술을 낳았고, 제국을 재편했으며, 사상을 확산시켰다.


전쟁터에서 흘린 피는 도로와 다리, 무기와 기계로 변해 문명의 속도를 높였다.
전쟁은 문명을 파괴하면서도 동시에 밀어 올리는 힘이 되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수백만이 목숨을 잃은 대가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교훈은 금세 희미해졌고, 새로운 세대는 또 다른 전쟁을 준비했다. 공포는 기록되었지만, 그것이 문명을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인간은 ‘절대 잊지 않겠다’며 추모식을 열었지만, 기억은 의외로 짧았다. 전쟁은 기념비로 남았고, 교훈은 상징으로 희석되었다. 그들이 되새긴 것은 교훈보다도 ‘승리의 서사’였다.


그들은 폭력을 혐오한다고 말하면서도, 가장 인기 있는 영상과 게임은 총성과 피로 가득했다. 아이들에게는 평화를 가르쳤지만, 성인이 되면 총을 드는 것을 미덕이라 여겼다. 교육과 현실의 간극은 언제나 전쟁 쪽을 이기게 했다.


모든 전쟁은 ‘방어’라 주장되었고, 그 주장은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가 공유했다. 인간은 수백 년을 들여 만든 도시를 며칠 만에 불태웠다. 문명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파괴하는 데는 주저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렇게 기록했다.
“이 종은 전쟁을 후회하면서도 중독처럼 반복한다. 전쟁은 인간 문명의 상처이자 습관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더욱 근원적인 모순을 발견했다. 인간은 전쟁을 ‘필요악’이라 부르면서도, 그 안에서 영웅을 찾고, 승리를 기념하는 문화를 멈추지 않았다. 병사의 죽음은 명예로 장식되었고, 정복자의 이름은 기념비에 새겨졌다.


우리는 인간이 ‘가장 위대한 인물’로 꼽는 세 사람을 살펴보았다.
칭기즈칸은 몽골 제국의 정복 전쟁으로 약 4,000만에서 5,000만 명의 생명을 앗아갔고, 알렉산더 대왕의 원정은 1,000만 명의 희생을 불러왔다. 진시황은 통일 전쟁과 만리장성 건설 과정에서 수백만 명의 목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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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들은 모두 찬양받았고, 위대한 이름으로 남았다. 가장 많은 생명을 앗아간 자가 ‘영웅’이 되었고, 도시를 불태운 자가 동상으로 세워졌다. 인간은 파괴의 손을 문명의 상징으로 바꾸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우리는 이 장면을 지켜보며 깊은 모순을 느꼈다.
“인간은 전쟁을 저주하면서도 찬양한다. 그 모순 속에서 문명은 성장했지만, 동시에 언제든 자멸할 가능성을 품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전쟁을 인간 문명의 가장 파괴적이면서도 가장 창조적인 충돌로 평가했다. 그러나 이 방식의 발전은 너무나 불안정했고, 언젠가 그들이 감당하지 못할 파국을 부를지도 모른다고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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