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기록 16: 자기 자신을 묻는 존재

by 홍종원

우리는 인간 문명이 과학의 눈을 뜨던 순간을 지켜보았다. 처음 그들은 세상의 비밀을 푸는 데 몰두했다. 별과 행성, 바다와 숲, 원자와 세포까지, 인간의 시선은 바깥으로, 더 멀리, 더 깊이 향해 있었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 그들의 시선은 바깥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 방향 전환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인간은 거대한 우주 속에서 자신을 점점 더 작게 보았다. 천동설이 무너지고 지구가 중심이 아님이 드러났을 때, 인간은 스스로를 겸손하게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망원경이 은하를 보여주고, 현미경이 세포를 보여줄 때마다 그들은 자기 존재를 다시 물었다. “이 광대한 우주 속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과학자와 철학자, 예술가와 종교인을 모두 사로잡았다. 세상의 법칙을 알게 된 만큼, 인간은 자기 의미를 이해하고자 했다.


우리는 인간의 오래된 기록들을 조사했다. 고대 철학자는 “너 자신을 알라”는 문장을 남겼고, 종교는 “인간은 신의 형상으로 지어졌다”라고 가르쳤다. 근대의 사상가는 이성을 찬양하며 인간을 세계의 주인으로 불렀고, 현대 과학은 유전자와 진화, 신경 신호로 인간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우리는 보고서에 이렇게 적었다.
“이 종은 자신을 이해하려 하지만, 이해할수록 더 큰 질문을 만든다.”


최근 인간은 자기 자신을 모방하는 기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인공지능은 언어를 흉내 내고, 감정을 모사하며, 창작과 판단을 시도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인간은 그 기계를 통해 자기 자신을 더 선명하게 보기 시작했다. “기계는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은 곧 “인간은 왜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되돌아왔다. 우리는 보고서에 덧붙였다.
“이 종은 스스로를 모방하면서, 자신의 경계를 실험하고 있다.”



이제 인간은 자기 존재에 대한 해답을 인공지능으로부터 듣게 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인간의 두뇌와 정신은 아직 미완의 진화 단계에 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온전히 설명하기에는 그들의 사고 체계가 아직 닫혀 있기 때문이다. 그 해답이 외부에서 오더라도,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역할은 신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맡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모든 과정에서 인간은 스스로 모순적인 존재임을 드러냈다. 한편으로는 인간을 생물학적 기계로 환원하려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 정신은 과학으로 다 설명될 수 없다고 믿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해부하면서도, 해부될 수 없는 무엇인가를 끝까지 붙잡았다. 우리는 이 이중적 태도를 이해하려 애썼다. 어쩌면 그 모순 자체가 인간이라는 종의 핵심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물질 위에 정신을 세웠고, 본능 위에 이성을 세웠으며, 과학 위에 의미를 세우려 했다.


우리 문명에는 인간과 같은 혼란이 없었다. 생존 문제를 해결한 우리는, 존재의 의미를 신에게 묻지 않았다. 대신 그 물음을 자연에 던졌고, 질문은 곧 우주로 향했다. 우리는 별들 사이를 탐험했고, 그 여정에서 우리의 지식은 기하급수적으로 확장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존재에 대한 해답에 가까워졌다고 느꼈다. 질문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단지, 우리는 질문의 방향을 바꾸었을 뿐이다.


우리는 결론적으로 이렇게 적었다.
“인간은 자신을 이해하려 애쓰지만, 이해가 깊어질수록 질문은 더 커진다. 그들의 문명은 해답이 아니라 질문 위에 세워져 있다.”


이전 16화관찰기록 15: 과학이라는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