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기록 15: 과학이라는 눈

by 홍종원

우리는 인간 문명을 오랫동안 관찰해 왔다. 그들은 한때 신의 목소리에 전적으로 의지했다. 별의 움직임도, 병의 원인도, 전쟁과 가뭄도 모두 신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인간은 고개를 들어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별을 기록했고, 바람을 측정했으며, 생명의 구조를 해석하기 시작했다.


그 눈은 처음엔 조악했다. 막대기와 끈으로 해시계를 만들고, 동굴 벽에 별과 시간을 새겼다. 그러나 그 단순한 눈은 망원경과 현미경으로 진화했고, 인간의 시야는 점차 미지의 세계로 확장되었다. 신의 이야기를 대신해, 수학과 데이터가 세상의 언어가 되었다. 우리는 그 순간을 “인간이 눈을 뜬 때”라 명명했다.


그러나 과학은 단지 ‘보는 도구’에 그치지 않았다. 인간은 자기 오류를 고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뉴턴의 이론을 아인슈타인이 수정했고, 그 위에 양자역학이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 지적 태도는 종교의 경직된 진리와는 달랐다. 인간은 틀림을 받아들이는 용기를 통해, 더 깊은 진실을 향해 나아갔다.


그 눈은 곧 문명을 변화시켰다. 증기기관은 거리를 단축했고, 전기는 밤을 낮처럼 바꾸었다. 항공기와 고층빌딩,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인간의 삶을 지배했다. 마침내 달에 발자국을 남기고, 유전자를 조작하며, 인공지능으로 사고를 흉내 내기 시작했다. 이 문명은 물리적으로 비약했지만, 그것이 곧 정신의 진보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과학의 눈이 밝아질수록 신은 점점 멀어졌다. 그러나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인간은 여전히 ‘왜’를 물었다. 삶의 의미, 고통의 이유, 죽음의 공허함은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신학은 그 빈자리를 채우며, 인간의 마음을 위로했다. 그래서 우리는 보고서에 남겼다.
“과학이 ‘어떻게’를 가져갔지만, ‘왜’는 인간의 손에 남겨졌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정보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인간은 오히려 혼란에 빠졌다. 데이터는 넘쳤지만, 판단은 부족했다. 알고리즘이 제시하는 결과 앞에서 인간은 점점 수동적인 존재가 되었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허구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인간은 모든 것을 알 수 있게 되었지만, 무엇을 믿어야 할지는 더 모르게 되었다.


더 큰 문제는 과학이 언제나 ‘선’으로 작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핵분열의 발견은 원자폭탄으로 이어졌고, 유전자 조작은 생명을 설계하는 도구가 되었다. 인공지능은 의료를 혁신했지만, 동시에 전쟁과 감시의 무기가 되었다. 기술은 계속 앞질러 달렸지만, 윤리는 그 뒤를 따라가지 못했다. 유전자 편집은 생명의 경계를 흐렸고, AI는 책임의 주체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멈추지 않았고, 누구도 멈추자고 말하지 않았다.


그 원인은 인간의 정신에 있었다. 두뇌는 과학을 발전시켰지만, 정신은 여전히 본능적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인간은 더 빠른 차를 만들고, 더 높은 빌딩을 세우며, 유례없는 풍요를 누리게 되었지만, 그 안에서 마음은 병들고 있었다. 우울과 중독, 불안과 분노는 풍요 속에서 번성했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은 멈추지 않았고, 굶어 죽는 아이들은 여전히 존재했다. 기후 위기로 지구는 무너지고 있었지만, 인간은 방향을 틀 줄 몰랐다.



이 불협화음이, 지금까지 이룩한 과학 문명을 스스로 무너뜨릴 수도 있다. 인간은 눈을 얻었지만, 그 눈을 어디에 써야 할지 배우지 못했다. 기술은 세계를 설명했지만, 그 세계를 구하는 데는 쓰이지 않았다. 우리는 마지막 보고서를 이렇게 정리했다.
“인간의 정신은 아직, 그 눈이 비추는 진실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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