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기록 14: 미와 예술의 탐닉

by 홍종원

우리는 인간 문명에서 한 가지 독특한 현상을 발견했다. 이 종은 생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것에 놀라운 열정을 쏟았다. 그것은 바로 아름다움이었다. 생존에 필요한 식량이나 도구가 아니라, 색과 선, 리듬과 서사를 다듬는 데 마음을 쏟았다. 그들은 돌에 신을 새기고, 천장을 별처럼 꾸미며, 음악과 시로 보이지 않는 감정을 담아냈다.


그 흔적은 프랑스 쇼베 동굴의 벽화에서도, 고대 그리스의 조각상에서도, 중세 유럽의 대성당에서도 발견된다. 인간은 이 활동을 위해 엄청난 시간과 자원을 사용했다. 때로는 목숨까지도 바쳤다. 우리는 보고서에 이렇게 적었다.
“이 종은 생존보다 의미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아름다움은 그들에게 필요가 아니라 욕망이다.”


우리 문명에는 이런 모습이 없었다. 우리는 생존을 우선했고, 효율성과 합리성 속에서 문명을 세웠다. 그러나 인간은 달랐다. 그들은 굶주림 속에서도 예배당을 세웠고, 전쟁 중에도 그림과 유물을 지켰다.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폭격 속에서도, 영국 국민들은 내셔널 갤러리의 그림을 런던 지하철역에 숨겨 보존했다.


파괴와 죽음의 한가운데서도 인간은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불렀다. 우리는 이 장면을 이해하려 애썼다. 아름다움은 인간에게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공동체를 하나로 묶고, 고통을 견디게 하며,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장치였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인간이 두려움과 절망조차 예술로 승화시킨다는 사실이었다. 피카소는 게르니카의 고통을 캔버스에 옮겼고, 나치 수용소에서는 몰래 바이올린을 켜는 이들이 있었다. 죽음을 앞둔 이들이 남긴 시와 그림은 그 자체로 하나의 저항이었다. 마치 그들은 말하고 있었다.
“아직 나는 인간이다.”


이 종은 감정을 억누르기보다, 예술로 녹여내는 방식으로 고통을 직면했다. 우리는 감탄과 당혹 사이에서 관찰을 이어갔다. 예술은 이 종에게 있어 본능 이상의 무엇이었다.


예술은 기술과도 결합했다. 인간은 기계로 멜로디를 만들고, 알고리즘으로 그림을 그리며, 가상현실에 미술관을 세웠다. AI 화가가 그림을 그리고, 로봇이 작곡한 교향곡이 연주된다. 스마트폰으로 누구나 사진작가가 되었고, 수백만 명이 매일 디지털 캔버스 위에서 감정을 쏟아낸다.


전통적인 붓과 캔버스를 넘어, 데이터와 코드가 새로운 창작의 도구가 되었다. 예술은 시대에 따라 진화했고, 인간은 언제나 그 경계를 확장해 왔다.


그러나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분명히 있었다. 인간은 때로 아름다움을 위해 스스로를 파괴했다.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수만 명의 노동력을 동원해 건설되었고, 베르사유 궁전은 백성의 세금을 쥐어짜 만든 공간이었다. 20세기의 전체주의 정권은 거대한 조형물로 권력을 미화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생명이 희생되었다.


현대에 이르러 아름다움은 인간 자신의 몸으로 향했다. 외모를 꾸미기 위한 성형 수술은 일상이 되었고, 그 결과물은 영상과 사진 속에서 ‘좋아요’라는 형태로 거래되기 시작했다. 유명 연예인과 인플루언서는 아름다움을 자산화했고, 이는 곧 비교와 경쟁의 대상이 되었다. 미는 감상의 대상에서 상품과 투자로 전환되었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인간의 또 다른 모순을 발견했다. 이 종은 ‘내면의 아름다움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외면의 아름다움에 더 끌렸다. 격언과 예술 작품은 진정한 아름다움이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고 외쳤지만, 연애와 채용, 신뢰와 인기의 대부분은 눈에 보이는 외모에 따라 결정되었다.


심지어 아름다움을 파는 이들은 ‘진정한 내면을 위하여’라는 문구를 전면에 내세우기도 했다. 말과 실제 사이의 간극은, 이 종의 의식 깊은 곳에 자리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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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현상은 지식과 예술의 영역에서도 드러났다. 우리는 사람들이 책의 내용을 기준으로 선택하기보다는, 표지 디자인이나 SNS 반응을 먼저 고려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예쁜 표지는 더 많이 팔리고, 서점의 진열대 앞에서는 종종 책의 ‘색감’이 선택의 기준이 되었다. 인간은 말로는 본질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포장에 끌린다.


이것이 이 종의 경이로움이자 모순이다. 그들은 아름다움을 창조하면서도, 동시에 그 아름다움에 자신을 희생한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이렇게 기록했다.
“인간 문명은 실용성 위에 세워졌지만, 그 문명에 영혼을 불어넣은 것은 예술이었다. 그러나 그 집착은 때로는 비합리적이고 자기 파괴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아름다움이 인간 문명의 가장 경이로운 부분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기술이 지배하는 세기에도, 그들은 여전히 노래를 만들고, 무대를 꾸미며, 사랑을 조형했다. 아마 이것이 인간이 인간인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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