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외계 생명을 상상할 때, 그들을 지혜롭고 평화로운 존재로 그린다.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문명이라면 당연히 폭력을 초월했을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이 믿음은 얼마나 근거가 있을까? 그들의 진화적 과거가 어떤 방향으로 흘렀는지에 따라, 그 성향은 전혀 달라질 수 있다.
지구의 생명은 경쟁과 포식 속에서 성장해 왔다. 에너지를 얻기 위해 다른 개체를 잡아먹는 전략은 효율적이었고, 생존을 위해 폭력은 선택이 아니라 본능이 되었다. 만약 외계 행성에서도 비슷한 조건이 주어졌다면, 그들의 본능 역시 지구 생명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진화가 폭력을 심었다면, 지성은 단지 그 폭력을 조율할 뿐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을 것이다.
물론 모든 생명이 폭력을 필연적으로 겪는 것은 아니다. 풍부한 에너지원이 있는 행성에서는 포식의 필요가 줄어들 수도 있다. 공생과 협력이 진화의 중심이 된 생명체라면, 폭력 대신 연결과 조화를 본능으로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가능성을 확신할 수 없다. 진화는 환경의 산물이기 때문에, 그들의 윤리와 본능은 우리 기준의 선악으로 쉽게 재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가 종종 외계 생명을 지혜롭고 착한 존재로 단정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본능과 윤리의 관계는 언제나 긴장 속에 있다. 인간도 문명을 이루었지만, 폭력의 역사를 완전히 지우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외계 문명이 아무리 고도화되었다 해도, 그 본능이 우리와 다를 거라는 보장은 없다.
그래서 우리가 외계 생명을 만난다면, 환영과 경계 사이에서 신중해야 한다. 그들이 평화의 사절일지, 아니면 냉혹한 생존 전략을 이어받은 존재일지는 알 수 없다. 외계 생명은 낭만적 환상의 대상이 아니라, 진화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