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자신의 멸종을 상상하기 어려워한다. 지구를 지배하고 있다는 자각은, 우리가 자연의 중심이라는 착각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과거의 지구도 누군가의 시대였다가, 다시 다른 생명의 시대로 바뀐 일이 수없이 많았다.
공룡은 1억 6천만 년을 지구 위에 군림했다. 그들의 시대가 갑작스럽게 끝났듯이, 인간 역시 기후 변화나 질병, 자원 고갈, 스스로 만든 기술 같은 한순간의 사건으로 사라질 수 있다. 믿고 싶어 하지 않겠지만, 신이 자연이라는 이름으로 실험을 이어왔다면, 인간 역시 그 실험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인간이 사라진 뒤, 다음은 무엇일까? 더 뛰어난 두뇌를 가진 포유류? 기존의 생명 원리를 뛰어넘는 새로운 유형의 유기체? 혹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전혀 다른 방식의 지성? 다음 실험은 반드시 ‘인간보다 나은’ 존재일 필요는 없다. 단지 환경에 더 적합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 질문은 인간이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금 떠오르게 한다. 신이 진화를 통해 생명을 실험해 왔다면, 그 존재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실패는 곧 새로운 실험의 여지를 의미하니까. 그리고 인간의 멸종은 어쩌면 또 다른 가능성의 문을 여는 일일지 모른다.
멸종은 끝이 아니다. 오히려 다음 생명의 시작을 위한 비움일 수 있다. 신이 있다면 그는 아마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좋아, 다음 가능성을 펼쳐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