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는 진보일까? 인간은 흔히 진화를 '더 나아지는 과정'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자연의 진화는 ‘좋아짐’이 아니라 ‘살아남음’에 대한 이야기다. 환경에 더 잘 적응한 자가 살아남을 뿐, 더 똑똑하거나 더 강한 자가 생존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으로도 진화는 직선이 아니었다. 수많은 생물 종이 사라졌고, 정교한 기관을 가진 생명체보다 단순한 구조를 가진 생물이 살아남기도 했다. 가장 오래 생존한 생물은 가장 단순한 세포였다. 인간보다 수십 배 뛰어난 감각과 힘을 지닌 생명체도 수없이 멸종했다.
그렇다면 신이 있다면, 그는 진화를 ‘발전’의 과정으로 만들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단지 더 많은 가능성을 시험해보고 싶었던 것일까? 진화는 뚜렷한 의도나 계획이 아니라 그저 흐름 속에서 쌓여온 결과일지 모른다. 만약 신의 손길이 닿아 있었다면, 그것은 하나의 목표를 향한 길이 아니라 끝없이 갈라지는 가능성의 길이었을 것이다.
인간은 진화를 ‘진보의 서사’로 해석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자연은 방향보다 다양성을, 완성보다 변화를 택해왔다. 진화는 하나의 목적지가 아니라, 질문의 연속이다. "이 조합은 어떻게 작동할까?"라는 끝없는 탐색.
결국 진화는 ‘더 나은’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만들어 왔다. 진화의 목적은 없었고, 다만 계속된 실험만이 있었을 뿐이다. 만약 신이 있었다면, 그는 완성된 생명을 바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신은 항상 미완의 존재만을 남겨두고 싶어 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