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의 나는 마음이 하루에도 몇 번씩 부서졌다. 별일 아닌 일에도 흔들렸고, 아무 일도 없어도 무너졌다. 20대와 30대 내내, 나는 스스로를 붙잡기 위해 애쓰며 방황했다. 단순한 일탈이 아니라, 평정을 유지하기 어려운 내면의 요동이었다. 이런 고통이 나만의 것이었다면 좋았겠지만, 많은 이들이 비슷한 시간을 지나왔으리라 생각한다.
그 시절 나는 크고 작은 고통을 감수하며 살았다. 불안정한 마음은 나를 괴롭혔지만, 동시에 인생에 대해 더 깊이 성찰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 과정을 통과하며 나는 나름대로 삶을 지탱하기 위한 기준들을 만들었다. 누구에게는 별것 아닐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생존을 위한 나침반이었다.
그중 하나는 지금까지도 내 삶을 이끄는 가장 단단한 신념이다.
“마음을 바꾸는 것보다, 환경을 바꾸는 것이 더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나는 이 단순한 문장을 오랫동안 삶의 기준으로 삼아왔다.
처음에는 나 역시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는 조언을 따랐다. ‘마음이 변하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는 말도 믿으려 했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애썼고, 감사의 목록을 쓰고, 명상과 자기 암시도 시도해 보았다. 때로는 억지로 웃으며 괜찮은 척 버티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은 그런 노력에 순순히 반응해주지 않았다. 일시적으로 나아지는 듯하다가도, 어느 순간 다시 깊은 무기력 속으로 가라앉곤 했다. 나를 지탱해 줄 줄 알았던 다짐들은 종이배처럼 무너졌고, 오히려 스스로를 더 다그치게 만들었다. 아무리 애써도 고통은 그 자리에 머물렀다.
그러던 어느 날, 전혀 예상치 못한 계기로 내 환경이 바뀌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환경이 바뀌자 마음도 자연스럽게 따라 바뀌었다. 억지로 변화시키려 할 때는 요지부동이던 마음이, 외부 조건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너무나도 쉽게 움직였다. 막혀 있던 길도, 새로운 환경 속에서는 더 이상 장애물이 아니었다.
물론 그 환경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변화는, 오래도록 움직이지 않던 마음이 처음으로 흔들리기 시작한 계기였다. 기존 환경에서는 아무리 애써도 바꿀 수 없던 마음이었다. 그러나 환경이 바뀌자, 그토록 요지부동이던 마음이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마음은 본래 복잡하고 깊으며, 변화에 저항하는 속성이 있다. 반면 환경은 상대적으로 조정 가능하며, 그 변화는 마음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그래서 나는 확신하게 되었다. 마음을 붙잡고 씨름하기보다, 그 마음이 머무는 자리를 바꾸는 것이 변화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사람들은 대개 이와 반대로 생각한다. 문제가 생기면 먼저 자신의 마음가짐부터 고쳐야 한다고 믿는다. 왜일까. 생각해 보면, 우리가 애초에 마음을 바꾸려 애쓰는 것도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문제의 근원이 마음이 아닐 수도 있다.
우리는 흔히 문제의 원인을 마음에서 찾는다. 자신이 나약해서 그렇다고, 생각이 부정적이어서 그렇다고 여긴다. 하지만 마음이란 본래 외부 환경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주변이 달라지지 않는 한 쉽게 바뀌지 않는다. 어쩌면 잘못된 건 마음이 아니라, 그 마음이 놓인 자리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고치려 드는 건 ‘고장 난 마음’이지만, 정작 고장 난 건 환경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환경부터 바꾸라는 말은 아니다. 나는 하나의 기준을 세워두었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보는 것. 최선도 다하지 않은 채, 그저 포기하듯 환경만 바꾼다면, 언젠가 ‘후회’라는 감정이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면, 해볼 수 있는 일은 모두 다 해봐야 한다. 그런 후에야 비로소, 환경을 바꾸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야 과거를 돌아보아도 미련이 남지 않는다.
나는 종종 과거의 순간들을 떠올리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같은 결정을 내릴 것인가?” 그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완벽하지는 않았을지라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다 했다고 믿는다. 그래서 가슴을 찌를 듯한 후회는 없다.
나는 지금도 믿는다. 마음을 변화시키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쓰기보다, 환경을 바꾸는 것이 더 빠르고 현실적인 길일 수 있다는 것을. 그것은 단지 내 경험에서 나온 결론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유용한 조언이 될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이 아니라 환경을 바꾸는 일을 부끄러워한다. 마치 책임을 회피하거나 도망치는 것처럼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죄책감이나 패배감에 시달린다. 하지만 환경을 바꾼다는 건 도망이 아니라 방향을 다시 잡는 일일 수 있다. 오히려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나는 그런 죄책감에 휘둘리지 않기를 바란다. 이 글은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쓴 것이다.
나는 이 글에서 말한 ‘마음’, ‘환경’, ‘최선’이라는 단어들을 구체적으로 정의하지 않았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사람은 그 의미를 직관적으로 알 것이라 믿는다. 그래도 부연하자면 이렇다.
내가 말하는 ‘마음’은 내면의 불안, 혼란, 고통과 같은 상태를 뜻한다. ‘환경’은 바깥에서 나를 둘러싼 조정 가능한 외부 조건을 말한다. 공간, 인간관계, 일, 생활 패턴 등이 해당된다. 예컨대 집안 가구 배치를 바꾸거나, 퇴근 후 동선을 달리하거나, 이사나 이직을 하거나, 어떤 사람과 거리를 두고 지내는 것까지 모두 포함된다. ‘최선’은 각자의 인내와 판단의 한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며, 그 기준은 스스로만이 알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마음을 고치려 애쓰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가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때로는 마음이 아니라, 그 마음이 머무는 자리를 바꾸는 것이 더 올바른 길일지도 모른다.
변화는, 의외로 바깥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