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져 가는 ‘통일’이라는 단어

by 홍종원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남북문제를 떠올릴 일은 거의 없다.
출근길에 밀리는 지하철, 물가 오른 장바구니, 아이들 학원비 걱정.
그 모든 현실이 눈앞에 버티고 있는 한, 북한은 늘 뉴스 속 한편의 먼 이야기일 뿐이다.


그러다 가끔, 뉴스에서 남북 접경지의 총성이나 미사일 발사 같은 사건이 보도될 때
그제야 “그래, 우리나라는 분단국이지” 하고 잠시 떠올린다.




최근, 중국에서 열린 전승절 80주년 기념행사를 보게 되었다.
푸틴, 김정은, 시진핑.
그 세 사람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TV 화면 너머로 바라보다가,
나는 오래된 장면 하나를 떠올렸다.


1953년, 휴전협정이 체결되던 날.
그 자리에도 북한과 중국, 그리고 그 뒤에 소련이 있었다.
7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건만, 그 구도가 지금까지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
왠지 모를 섬뜩함이 밀려왔다.



아마도 예전에 『어느 날 통일이 되었다』라는 책을 쓰며
한반도 통일 문제를 공부했던 기억 때문인지,
그 장면이 유독 쉽게 떠올랐는지도 모르겠다.




더 놀라운 건,
그 오랜 시간 동안 남북한이 여전히 ‘휴전 상태’로만 살아왔다는 사실이었다.
이 땅은 70년이 넘도록 ‘끝나지 않은 전쟁’ 속에 있는 셈이다.


우리는 이미 분단 3세대를 지나고 있다.
한 세대를 보통 25년이라 한다면, 75년의 시간 동안
북한도, 남한도 너무도 달라졌다.


한국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는 거의 사라졌고,
기억으로만 전해지는 전쟁은 점점 더 낯설어지고 있다.


우리 젊은 세대는 ‘통일’을 꼭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통일은 부담이고, 불확실성이며, 복잡한 문제일 뿐이다.


북한의 젊은 세대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남한은 그저 좀 잘 사는 외부 국가일 뿐,
같은 민족이라는 말은 형식적 관념에 불과할 수 있다.




북한 정권은 한때 남한을 ‘해방의 대상이자 통일의 파트너’로 헌법에 명시했었다.
그러나 2024년 헌법 개정 이후, 남한은 공식 문구에서 완전히 지워지고 오히려 ‘적대 국가’로 규정되었다.
말 그대로 통일이라는 단어가 북한의 법적·정치적 수사에서 사라진 것이다.


현실은 더 냉혹하다.
북한 주민의 절반 이상은 분단 이후에 태어난 세대다.
그들에게 남한은 함께 살아본 적 없는, 낯설고 멀고 때로는 위협적인 대상일 수 있다.


70년 넘게 이어진 주체사상 교육과 대남 적대 선전은
남한을 ‘미국의 앞잡이’, ‘부패한 자본주의의 상징’으로 반복해 그려왔다.
일부 주민들은 불법 유입된 드라마나 음악을 통해 남한을 동경하기도 하지만,
이는 일부 지역과 계층에 한정된다.


‘같은 민족’이라는 말은 남과 북 모두에게서 점점 감정적으로 희미해지고 있는 중이다.




서로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고 있다.
이념, 체제, 생활 방식, 문화.
서로 너무 멀어진 탓에, 동질감보다 낯섦이 더 크다.


통일을 말하는 목소리는 점점 줄어들고,
남과 북 모두의 젊은 세대는 통일을 ‘자연스럽게 잊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나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지금 우리가 북으로 향한다면, 그들은 우리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만약 이런 상태에서 제2의 한국전쟁이 벌어진다면,
과연 북한 주민들은 우리를 독재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존재로 여길까,
아니면 침략자로 받아들일까?


쉽게 대답할 수 없는 문제다.
우리가 해방을 외친다고 해서 그들이 곧바로 우리를 해방군으로 받아들일 거라는 믿음은, 어쩌면 위험한 착각일지도 모른다.


북한 주민들은 오랫동안 외부 개입에 대한 깊은 불신을 학습해 왔다.
미국도, 중국도, 남한도 모두 믿을 수 없는 존재로 여겨지는 사회 속에서 살아왔다.


일부 탈북민들은 이런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언급한다.
“만약 남한이 군사적으로 북한을 흡수 통일하려 한다면, 일부 주민들은 상당한 반발을 보일 수도 있다”라는 우려를 내놓는다.
물론 이 의견이 북한 주민 전체의 생각을 대변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만큼 상황이 단순하지 않다는 점을 시사한다.


군사 진군은 곧 전쟁이고, 전쟁은 가족의 죽음과 마을의 파괴를 의미한다.
그런 상황 속에서 ‘해방’은 외쳐지는 구호일 뿐,
그들의 눈에는 탱크와 총, 낯선 언어와 문화만이 보일 것이다.




가끔 유튜브로 보는 탈북자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북한 주민들 가운데서도 어떤 방식으로든 통일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북한 체제가 무너지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면,
그런 바람을 가진 사람들이 주류라고 보기는 어렵다.


실제로 독일 통일 당시에도,
동독 주민들 중 일부는 서독을 해방군이 아닌 ‘점령군’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조차 그랬다면,
70년 넘게 적대감을 학습해 온 북한 주민들이
남한 군대를 어떻게 바라볼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나는 왜 이렇게 남북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시작은 언제나 ‘두려움’이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를 붙잡고 있는 감정은 바로 그것이다.


경제 위기나 정치 혼란도 물론 두렵다.
하지만 그것들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공포는 전쟁이다.


제2의 한국전쟁.
우리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릴 수 있는 유일한 사건.
그리고 나는,
그 일이 현실이 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느낀다.


잊고 지내다 문득 떠오르는 전쟁의 그림자.
그건 결코 나만의 불안은 아닐 것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3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수많은 민간인, 병사, 가족들.
모두가 일상에서 밀려나 고통의 중심이 되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중동 지역의 분쟁은 언제나 끝이 없다.
중국의 대만 침공설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전쟁은 더 이상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시간은 계속 흘렀고,
해결은 점점 더 멀어졌다.


새로운 세대는 이제 통일을
‘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저 ‘생각하지 않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통일’이라는 말은
점점 더 교과서 속 단어가 되어가고,
뉴스 속 이슈일 때만 잠시 떠오르는 존재가 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해법은 요원하고,
서로를 향한 관심은 점점 사라진다.


통일은, 정말 가능한 일일까?
끝없이 드리운 안갯속 길처럼,
해법은 아직도 멀리 흐릿하게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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