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성의 늪에 빠져, 자유를 잃은 우리

by 홍종원

한때 나는 매일 아침 지하철을 타고 출근했다.
사람들 틈에 끼어 손잡이를 잡고 멍하니 서 있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곤 했다.


‘내 삶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누가 나에게 이 삶을 살라고 했던가.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았는데,
눈을 떠보니 어느새 세상 한가운데 서 있었다.


사르트르는 말했다.
“인간은 이 세상에 내버려진 존재다.”


그 말이 이상하게, 묘하게 와닿았다.
이유도, 목적도 없이 시작된 인생.
그런데 왜 우리는, 이렇게까지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살아가는 걸까?




무언가 대단하고, 완벽하고, 절대적인 진리.
세상을 한 줄로 꿰뚫을 수 있는 말이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았다.
20대의 나는 그런 걸 찾기 위해 책을 읽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을 두고도,
그런 진리는 끝내 발견하지 못했다.
세상은 그런 진리를 감춘 것이 아니라,
애초에 그런 ‘절대’는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누구도 우리에게 ‘왜 여기 있는지’를 설명해주지 않았다.
우리는 어떤 안내도 없이 이 세상에 던져졌고,
눈을 떠보니 이미 삶은 시작되어 있었다.


방향도 없었고, 정답도 없었다.
삶은 어느새, 아무 예고도 없이 시작되어 있었다.
의식이 깨어나보니, 우리는 어느새
이 복잡한 세계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렇게 마주한 세상은
‘절대’라는 말보다는
‘상대’라는 말이 훨씬 더 잘 어울렸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세상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그 어떤 설명도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기에,
우리는 역설적으로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누군가의 뜻에 따라 주어진 삶이 아니라,
해석되지 않은 삶.
그래서 더 자유로운 삶이 우리 앞에 놓여 있었다.


우리는 본래부터 자유로운 존재였다.
우리를 이끌어줄 절대적인 기준도 없고,
책임을 대신 져줄 타인도 없다.


결국 우리는,
방향도 정답도 없이 열린 가능성 위를
스스로 걸어가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물론 자연적인 제한 조건은 존재한다.
공기가 없으면 살 수 없고,
절벽에서 떨어지면 다치거나 죽는다.
이런 제약은 물리 법칙이고,
거부할 수 없는 조건이다.


또한 우리는 사회라는 구조 안에 살아간다.
서로의 안전과 질서를 위해
법과 제도를 만들어, 그것을 지킨다.
이것은 우리가 합의한 구속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자연의 법칙도, 사회의 규칙도 아닌
우리를 가장 강하게 묶고 있는 것은
어쩌면 우리 스스로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매일 남과 나를 비교한다.
외모, 학벌, 재산, 직장, 집, 말투, 가족, 옷, 사는 곳…
우리는 그 모든 것에서 비교하며 살아간다.


비교는 차이를 낳고,
그 차이를 통해 존재를 구별하고,
구별을 통해 자신을 확인한다.


나는 이 비교가 단지 욕심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비교는 어쩌면 인식의 본질일 수 있다.


우리는 어떤 것이 ‘다르다’고 느낄 때,
비로소 그것을 인식한다.
인공지능도 그렇다.
모든 것이 같다면, 구별도, 인식도 없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는 절대적 기준이 없기에
자꾸 상대적인 비교를 통해
자신을 파악하려고 한다.


‘나는 어느 정도 위치에 있나?’
‘나는 저 사람보다 잘 살고 있나?’
이런 질문은,
자신을 확인하기 위한 심리적 반사 작용일지도 모른다.


비교는 때로 필요하지만,
그에 빠질수록 우리는 자유를 잃는다.
그 상대성의 늪이,
우리의 발목을 서서히 잡아당기기 시작한다.




우리는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느낀다.
누군가는 우리보다 더 많이 벌고,
더 잘나 보이고, 더 좋은 것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도 그래야만 한다고 느낀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스스로에게 요구한다.
더 많이, 더 빨리, 더 높이.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그들이,
과연 정말 우리보다 더 행복할까?


더 많은 걸 가진 사람은
그만큼 더 많은 걸 잃고 있을 수도 있다.
건강일 수도 있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일 수도 있고,
혹은 자신에 대한 여유일지도 모른다.




통닭 한 마리로 네 식구가 웃으며 식사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지 않겠는가.
그런 사람들을 보며
내가 더 불행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점점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본래 자유로운 존재였다.
하지만 절대가 없는 세상에서
‘상대’를 통해 나를 인식하려 하다 보니,
그 상대성의 늪에 빠져
스스로를 구속하고 있는 건 아닐까?


누구도 우리를 묶지 않았는데,
우리는 스스로 경쟁하고,
스스로를 판단하며,
스스로를 밀어붙인다.


자유를 줬더니,
비교로 그것을 가둬버리는 삶.


이것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모순된 현실이 아닐까?
지금, 그 늪에서 잠시 벗어나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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