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뽕 한 그릇이 알려준 글쓰기 혁신

by 홍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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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중국집에 가면 늘 같은 고민을 한다.
짬뽕을 먹을까, 짜장면을 먹을까.


요즘은 짬짜면도 있으니 선택지는 더 넓어졌지만, 여전히 그 갈림길 앞에서 망설인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언제나 짬뽕이다. 뜨거운 국물과 쫄깃한 면발이 주는 얼큰함, 그 맛을 나는 좋아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나는 늘 상상 속의 짬뽕맛을 기대하며 기다린다.


그러나 결과는 늘 비슷하다.
국물은 깊이가 없고 그저 짜기만 하다. 매운맛마저 인공적인 캡사이신의 자극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면도 쫄깃하기는커녕 밀가루 맛이 확 풍긴다.


내가 원하는 것은 단순하다.
매운맛 속에 은근한 단맛이 스며 있고, 한 그릇을 다 먹고 나서도 다시 생각나는 그런 맛이다. 그러나 현실의 짬뽕은 언제나 나를 배신한다.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가게를 바꿔 본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이번에는 다를까 싶어서다.


하지만 결과는 늘 비슷하다.
그냥저냥 먹을 만하면 그 집은 이미 이 동네 맛집이다. 어떤 집은 먹고 나서 욕이 나올 만큼 형편없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왜 이럴까? 그들도 자기네 짬뽕을 먹어봤을 텐데, 정말 이게 맛있다고 믿는 걸까? 아니면 재료 값과 이윤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걸까?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이렇다.
지금까지 이 맛으로도 그럭저럭 장사가 되었으니 굳이 바꿀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맛을 개선하려고 재료를 바꾸어 조금 더 비싸게 팔아도 주문이 크게 늘 것 같지 않고, 가격이 오르면 오히려 손님이 줄어들까 봐 걱정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들에게 짬뽕 맛을 잘못 바꿨다가 가게 운영에 위험을 초래할 만큼 절박한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언제까지 통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근처에 정말 맛있는 집이 하나 생기면 상황은 달라진다. 사람들은 그런 집을 찾아 멀리서도 일부러 차를 몰고 오고, 대기표를 뽑아가며 기꺼이 기다린다. 맛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단순하고 강력한 진실이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적어도 음식점이라면, 설령 이익이 조금 줄어들더라도 맛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게 음식점의 존재 이유이고, 앞으로 살아남기 위한 가장 확실한 전략이라고 나는 믿는다.




나는 오랫동안 회사라는 조직에서 일했다.
그 안에서 하나 분명히 느낀 것이 있다.


회사는 늘 변화를 추구한다.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는 특히 조직 개편이 일상이었다.
심한 해에는 1년에 한두 번, 보통은 2~3년에 한 번꼴로 조직이 바뀌곤 했다.


새로운 시장에 맞춰 부서를 나누거나 합치고, 필요 없는 부서는 없애기도 했다. 전략이 달라지면 사람들의 자리가 통째로 바뀌는 일도 있었다.


조직 개편이란, 변화하는 시장에 발맞춰 회사의 방향을 새롭게 설정하고 그에 맞게 내부 구조를 다시 짜는 일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시장이 변하면, 회사도 변해야 한다. 새로운 시장에 진입하려면 내부를 재정비하고 방향을 틀어야 한다. 그래서 변화는 선택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과정이 된다.


하지만 때로는 그 변화가 정말 필요한가 싶은 순간도 있다.
시장도 그대로고, 전략도 달라진 게 없는데도 매년 조직 개편을 반복하는 회사도 있다.


그럴 때면 직원들의 불만과 원성이 터져 나온다.
조직 개편은 회사에도 부담이지만 직원들에게는 부서 이동이나 자리 변경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회사는 계속 변화를 시도한다.
‘살아남으려면 끊임없이 바뀌어야 한다’는 믿음이 조직 깊숙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서점에 가보면 금세 알 수 있다.
기업 경영을 다룬 책 가운데 ‘변화’라는 단어가 없는 책은 거의 없다. 변화하지 않는 조직은 금세 뒤처지고, 결국 문을 닫는다.


많은 회사가 그 위기를 직접 겪었고, 또 다른 회사의 몰락을 지켜보며 교훈을 얻었다.


그래서 기업은 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변해야 한다는 사실을.




글쓰기도 변해야 한다.


나는 얼마 전, 짬뽕을 먹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어떤 중국집은 늘 똑같이 맛없는 짬뽕을 내놓으면서도 바뀌지 않을까?
또 왜 어떤 회사는 전략도 시장도 그대로인데 해마다 조직 개편을 반복할까?


이 질문은 곧 나에게 되돌아왔다.
“나는, 내 글은 과연 변화하고 있는가?”


글쓰기에 대해 말한다는 게 감히 주제넘을지도 모른다.
특히 나처럼 글쓰기 초보자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 가지 확신만은 있다.


글쓰기의 본질은 생각과 느낌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그것이 글의 존재 이유이며,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글쓰기의 목적이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하고, 플랫폼이 바뀌고, 도구가 진화해도 글의 목적은 여전히 ‘전달’이다. 내 안에 있는 생각과 감정, 통찰, 그리고 질문을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 한, 글쓰기는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또 하나의 질문이 생긴다.
“나는 지금, 제대로 쓰고 있는가?”


아무리 좋은 생각이라도 독자에게 닿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논리적인 말도, 아름다운 문장도, 독자가 이해하지 못하면 공허하게 흩어질 뿐이다.


주제가 독자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면, 아무리 정성 들인 문장도 그냥 스쳐 지나간다.


물론 어떤 글은 지금은 주목받지 못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평가받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한 번쯤은 돌아봐야 한다.


내 글은 정말 누군가에게 닿고 있는가, 아니면 내 안에서만 맴돌고 있는가?
나는 지금 잘 쓰고 있는가?




미래의 책은 어떻게 변할까.


아마도 10년, 20년 후면 지금과는 꽤 달라져 있을 것이다.
아니, 사실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점점 더 짧고 직관적인 것을 원한다. 긴 글은 기피하고, 영상과 이미지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그렇다면 글도 변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또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왜 그렇게 글자에만 매달리는가?”


우리 앞에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하얀 종이가 있다.
그 위에 우리는 생각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 그런데 왜 항상 문장만 떠올릴까?


그림은 안 되는가?
음악은 불가능한가?
영상은 글이 아닌가?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시는 시다워야 하고, 수필은 수필다워야 하며, 소설은 소설다워야 한다는 고정관념 속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형식이 아니라 목적이다.


전달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그에 가장 적합한 수단으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정확한 글쓰기다.


시, 소설, 수필이라는 구분은 표현의 편의를 위한 것일 뿐 본질은 ‘전달’이다.


그림 한 장이 글보다 더 강하게 마음을 울릴 수 있다면 그림을 그려야 한다.
음악 한 곡이 문장보다 더 풍부하게 감정을 담아낼 수 있다면 그 곡을 흘려보내야 한다.
움직이는 영상이 더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다면 그것도 글쓰기의 한 방식이 될 수 있다.


앞으로의 글쓰기는 더 이상 글자에 갇히지 않을 것이다.
생각을 전달하는 방식은 글자를 넘어 그림, 영상, 음악, 인터랙티브 표현까지 확장될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될 것이다.


AI는 여기서 중요한 도구가 될 것이다.
많은 사람이 AI 글쓰기를 부정적으로 보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AI는 작가를 대신하지 않는다. 작가가 더 잘 표현하도록 돕는 조력자다.


우리가 원고지 대신 워드 프로그램을 쓰고, 종이책 대신 전자책을 읽고, PC 대신 휴대폰으로 글을 보듯이 AI도 그 과정의 연속일 뿐이다.


중요한 건 글을 쓰는 사람의 생각이다.
AI는 그 생각을 더 잘 전달하도록 돕는 역할을 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글쓰기도 변해야 한다.


글의 목적은 여전히 ‘생각의 전달’이지만, 그 방법은 훨씬 더 자유로워져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나는 지금 잘 쓰고 있는가?”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물어야 한다.
“나는 자유롭게 쓰고 있는가?”


변화하지 않는 중국집이 늘 그 맛없는 짬뽕을 내놓듯, 변화하지 않는 글쓰기도 언젠가는 독자에게 외면받을 수 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자기 글을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 글이 정말 독자에게 닿고 있는지, 아니면 그저 내 안에서만 맴돌다 끝나는 건 아닌지 말이다.


그래서 변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조금 더 솔직하게, 조금 더 따뜻하게, 때로는 완전히 새로운 시도로 독자에게 다가가야 한다.


그게 글이 살아남는 길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혹시 이 글에 오해의 여지나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내 개인적인 부족함에서 비롯된 것이니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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