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플라스틱 의자에서의 3시간, 그리고 기계가 된 환자
응급실 대기실의 딱딱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시계를 봅니다. 숨을 헐떡이며 고통을 호소하는 가족을 부축해 이곳에 도착한 지 벌써 3시간이 다 되어가지만, 저희를 부르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나중에 온 다른 환자가 먼저 불려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속이 타들어 가 조심스레 간호사 스테이션으로 다가가 묻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바쁘고 지친 기색이 역력한 짧은 대답뿐입니다. "순서대로, 그리고 응급도에 따라 진료 중이니까 자리에 가서 조금만 더 대기해 주세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사무적이고 차가운 그 한마디에 마음이 급한 보호자는 마치 떼를 쓰는 아이가 된 것 같아 무력하게 자리로 돌아올 뿐입니다.
응급실의 문턱을 넘어 천신만고 끝에 병동으로 올라와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침 회진 시간, 여러 명의 젊은 의사들을 대동하고 나타난 주치의가 저희 병상에 머무는 시간은 길어야 1, 2분 남짓입니다. 밤새워 뜬눈으로 지새우며 수첩에 빼곡히 적어둔 질문을 조심스레 꺼내보려 입을 뗍니다. 하지만 환자와 눈을 맞추기보다 차트와 모니터를 더 오래 응시하던 의사는 "수치는 괜찮아졌으니 일단 지켜봅시다"라는 짧은 말만 남긴 채 바쁘게 다음 병상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왜 아픈지, 앞으로의 치료 계획은 무엇인지, 약의 부작용은 없는지 묻고 싶어도 감히 질문할 틈조차 주어지지 않는 고압적인 분위기에 압도되고 맙니다.
어쩌다 회진 시간을 놓치거나 간호 처치 중에 미숙한 모습을 보이면, 무안한 상황이 생기기도 합니다. "회진 때는 자리를 지켜주셔야 합니다", "이런 건 보호자분이 미리 챙겨주셔야 해요"라는 핀잔 섞인 말 한마디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혹시나 유난 떠는 보호자로 찍혀 아픈 가족의 치료에 조금이라도 불이익이 생길까 두려워, 묻고 싶은 수많은 말들을 꿀꺽 삼키고 연신 고개만 끄덕이게 됩니다. 여기서 밀려나면 더 이상 중증인 가족을 데리고 갈 곳이 없다는 벼랑 끝의 절박함은, 환자와 보호자를 스스로 철저히 눈치를 보는 약자의 입장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질병 앞에서는 누구나 약자일 수밖에 없지만, 병원 안에서의 권력관계는 그 사실을 더욱 뼈저리게 느끼게 합니다.
주치의가 떠난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쉴 새 없이 병실을 오가는 간호사들입니다. 수액 팩을 교체하고 모니터의 알람을 끄는 손놀림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고 정확합니다. 하지만 불안에 떠는 환자에게 상황을 설명해 주거나 따뜻한 위로를 건넬 여유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밤새 환자가 통증을 호소해 조심스레 호출벨을 누르면, "조금 전에 진통제 들어갔으니 조금만 더 참아보세요"라며 황급히 자리를 뜹니다. 낯선 병시중에 서툴러 머뭇거리면 바쁜 걸음을 멈춘 간호사의 작은 한숨 소리가 들리기도 합니다. 기계음이 울리면 달려와 무표정하게 버튼을 누르고 다음 병상으로 쫓기듯 사라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보호자인 저는 또다시 입을 다물게 됩니다.
아픈 가족의 곁을 지키며 제가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의료 기술이 아니라, 철저히 단절된 소통과 차가운 병동의 공기였습니다. 생명을 다루는 치유의 공간이어야 할 곳에서 따뜻한 돌봄의 말 한마디를 기대하는 것은 사치에 불과했습니다. 그 빈자리에는 흰 가운을 입은 전문가로서의 우월감과 일방적인 지시, 그리고 생살여탈권을 쥔 이들 앞에서의 무조건적인 순응이라는 권위적인 관계만 덩그러니 남았습니다. 거만하고 불친절한 태도 앞에서 환자는 인격체가 아닌 처분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 같아, 병실의 밤은 깊은 씁쓸함과 무력감으로 채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