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를 먹고 자라는 혐오 비즈니스

위안부 역사 부정을 단순한 일탈이 아닌 '구조'로 읽어내기

by 홍종원

최근 평화의 소녀상 앞이나 일선 학교에서 위안부의 강제성을 부정하는 단체들의 시위가 큰 사회적 공분을 샀습니다. 심지어 올해 초에는 대통령까지 나서서 이들의 행태를 강하게 비판했고, 결국 경찰의 집중 수사로 이어지며 단체의 거리 활동이 잠정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뉴스를 접한 많은 분들은 대체 왜 아직도 저렇게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분노 섞인 의문을 품곤 합니다. 보통 이들이 일제강점기의 향수에 젖어 있거나, 그저 역사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일부 계층일 것이라고 짐작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현상의 이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들의 행동이 단순한 무지나 과거에 대한 맹목적인 향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유엔(UN) 인권위원회의 공식 보고서나 수십 년간 쌓여온 피해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몰라서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사회가 오랜 시간 아픔을 딛고 합의해 온 '보편적 인권과 역사적 진실'이라는 소중한 가치 자체를 흔드는 데 진짜 목적이 있습니다. 가장 아픈 상처인 위안부 문제를 의도적으로 자극함으로써, 자신들과 관점이 다른 시민사회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고 사회적 갈등을 부추겨 자신들의 영향력을 키우려는 계산된 행동에 가깝습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들은 2010년대 미국에서 득세했던 '대안 우파(Alt-right)'의 조롱 방식을 전략적으로 차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대안 우파란 기존의 점잖은 보수를 거부하고, 인터넷 유행어나 혐오스러운 말들을 무기 삼아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적 규칙들을 무너뜨리려 했던 극단적인 세력을 뜻합니다. 이들은 진지하게 대화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일부러 상대방을 화나게 하고 조롱하는 이른바 '악의적 관심 끌기'를 통해 자기편을 열광시키고 존재감을 뽐냈습니다. 한국의 역사 부정 세력 역시 진지한 학술 토론 대신 거리로 나와 자극적인 현수막을 걸고 가장 모욕적인 언어를 쏟아내며 대중의 시선을 강제로 끌어당깁니다. 주류 언론이 경악하고 공권력이 이들을 비판할수록, 이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불편한 진실을 말해 핍박받는 투사라는 영웅 서사를 씁니다. 사회적 비난을 두려워하기는커녕, 그 분노를 지지층 결속의 가장 훌륭한 땔감으로 삼아 혐오의 볼륨을 더욱 키워갑니다.


​가장 씁쓸한 대목은 대중의 분노와 사회적 갈등이 이들에게 든든한 '돈줄'이 되는 기형적인 수익 구조입니다. 과거 《PD수첩》이나 《뉴스타파》 같은 탐사보도 매체들이 추적한 바에 따르면, 이들의 자금 흐름은 크게 두 갈래의 견고한 파이프라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째는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분노의 수익화'입니다. 이들이 소녀상 앞에서 자극적인 퍼포먼스를 벌이거나 혐오 발언을 쏟아내면, 유튜브 알고리즘은 이를 논란의 중심으로 밀어 올려 엄청난 조회수를 만들어냅니다. 늘어난 조회수는 곧바로 광고 수익으로 연결될 뿐만 아니라, 이들의 극단적 주장에 열광하는 강성 지지층을 결집시킵니다. 이 지지층은 방송 중 '슈퍼챗(실시간 후원금)'을 쏘거나 채널의 유료 회원으로 정기 결제하며 매달 거액의 활동 자금을 직접 쥐여줍니다. 대중이 분노하며 이들의 영상을 찾아볼수록 지갑이 두꺼워지는 구조입니다.

​둘째는 국경을 넘나드는 '일본 극우 자본과의 공생 거래'입니다. 한국 내에서 위안부의 강제성을 부정하는 목소리가 커지면, 이를 가장 반기는 곳은 일본의 우익 세력입니다. 일본의 대표적인 극우 잡지들은 이들에게 비싼 원고료를 주며 지속적으로 기고를 청탁합니다. 또한, 이들의 억지 주장을 담은 책이 일본어로 번역되면 현지 우익 단체들이 이를 대량으로 구매해 베스트셀러로 만들어주는 방식으로 막대한 인세 수익을 보장해 줍니다. 즉, 한국인 학자나 활동가의 입을 빌려 자신들의 역사 왜곡을 정당화하고, 그 대가로 경제적 보상을 내어주는 완벽한 거래인 셈입니다.

​결국,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는 역사 부정은 단순한 이념의 차이나 일회성 해프닝이 아닙니다. 이는 국내의 맹목적인 후원금과 일본 우익 자본이라는 두 개의 엔진을 달고 조직적으로 돌아가는 거대한 '혐오 비즈니스 생태계' 그 자체입니다.


결국 우리가 이들의 억지 주장에 감정적으로 분노하고 맞대응하는 것은, 오히려 그들이 쳐놓은 덫에 걸려 비즈니스의 동력을 보태주는 격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는 감정을 잠시 거두고, 이들의 돈줄과 활동 공간을 구조적으로 차단하는 냉정하고 합법적인 제어 장치를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이미 뼈아픈 역사 청산의 경험이 있는 유럽 국가들의 선례는 우리에게 아주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해법의 방향타를 제시해 줍니다.


실제로 독일은 형법 제130조 인 '국민선동죄(Volksverhetzung)'를 통해 나치의 범죄를 부정하거나 축소하는 행위를 징역형으로 엄격하게 다스립니다. 프랑스 역시 1990년 제정된 '게이소법(Loi Gayssot)'을 바탕으로 반인륜적 범죄를 부정하는 발언을 민주주의를 갉아먹는 범죄로 규정해 강력히 처벌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독일은 2018년부터 '네트워크 집행법(NetzDG)'을 시행하여, 플랫폼 기업이 명백한 혐오 발언을 방치할 경우 최대 5천만 유로(약 700억 원)의 막대한 벌금을 물려 기업 스스로 혐오 수익 창출을 차단하도록 강제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도 이제 사자명예훼손이나 모욕죄라는 좁고 방어적인 법적 테두리를 넘어, 공동체의 평화를 위협하는 혐오 비즈니스를 포괄적으로 규제할 새로운 합의가 절실합니다. 역사의 아픔을 교묘하게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행위는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결코 보호받을 수 없습니다. 이 기형적인 혐오의 사슬을 제도적으로 끊어내는 것, 그것이 결국 우리 사회와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증명하는 가장 확실하고 단호한 응답이 될 것입니다.



이 글은 최근의 사회 현상을 지켜보며 정리한 개인적인 분석입니다. 민감하고 복잡한 사안인 만큼, 제 글을 포함한 여러 주장에 대해 늘 다각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해 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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