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위임한 생명, 권력이 되어버린 면허 3

의료를 바라보는 세 가지 시선, 그리고 한국 의료의 딜레마

by 홍종원

의료 시스템을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현재 우리가 직면한 문제점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마주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럼 지금부터 그 대표적인 시스템들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세계 각국은 '건강과 생명'이라는 가치를 시장의 상품으로 간주할 것인지, 아니면 국가가 책임져야 할 공공재로 여길 것인지에 따라 전혀 다른 의료 체계를 구축해 왔습니다. 이러한 근본적인 철학의 차이는 결국 의사를 어떻게 양성하고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방식의 차이로 직결됩니다.


첫 번째는 미국으로 대표되는 '시장 자율형' 시스템입니다. 미국은 연방 정부가 나서서 의대 신입생 정원을 강제로 제한하지 않습니다. 대학이 우수한 교수진과 실습 병원을 갖추고 민간 기구의 엄격한 질적 검증을 통과한다면, 정원 규모나 의대 신설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이 방식은 대학과 병원 간의 치열한 경쟁을 유도하여 세계 최고 수준의 혁신을 창출하지만, 의사가 되기 위해 수억 원의 부채를 짊어져야 하고 그 비용이 고스란히 높은 진료비로 전가되어 극단적인 의료 양극화를 초래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영국과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의 '국가 책임형(공공재)' 시스템입니다. 이들 국가는 의사를 철저히 국가의 자산으로 간주하며, 정부가 세금을 투입해 의대생들의 교육비를 거의 전액 지원합니다. 교육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기에, 정부가 향후 필요한 의사 수를 추산하여 정원을 통제하고 필요한 지역에 강제로 배치하는 권한이 강력한 사회적 정당성을 얻습니다. 경제적 능력과 관계없이 누구나 평등하게 치료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의사의 직업적 자유가 제한되고 환자의 진료 대기 시간이 길어진다는 뚜렷한 한계가 존재합니다.


세 번째는 일본의 '실용적 통제형' 시스템입니다. 일본은 한국과 유사하게 전 국민 건강보험 제도를 유지하며 국가가 의대 정원을 관리하지만, 시장 논리로 인해 의사들이 대도시로만 쏠리는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영리한 타협안을 마련했습니다. 바로 '지역정원제'입니다. 전체 의대 정원의 약 20%를 '졸업 후 해당 지역에서 9년간 의무 복무할 학생'으로 선발하는 방식입니다. 이 제도로 선발된 학생들에게는 지자체가 6년간의 의대 등록금은 물론, 매월 100만 원 남짓한 생활비까지 파격적으로 지원합니다. 이 방식은 막대한 비용을 들여 의대를 신설하거나 시스템 전체를 개편하지 않고도, 기존의 통제 체계 안에서 시급한 지방 의료 문제에 숨통을 틔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만, 의무 복무 기간이 종료된 후 의사들이 다시 대도시로 회귀하는 현상을 근본적으로 막기 어렵고, 직업 선택의 자유를 둘러싼 논란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 단점입니다.


그렇다면 한국 의료 시스템의 현주소는 어디일까요? 안타깝게도 우리는 미국의 단점과 유럽의 단점이 기형적으로 결합된 모순의 한복판에 놓여 있습니다. 한국의 의대생들은 미국처럼 연간 1,000만 원이 넘는 등록금과 막대한 사교육비 등 모든 비용과 위험을 온전히 개인이 감당하며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의사가 됩니다. 철저한 시장 논리 속에서 사비를 들여 면허를 취득했기에, 이들은 당연히 투자한 만큼의 보상을 시장에서 자유롭게 얻고자 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면허를 취득하고 사회에 진출하는 순간, 국가는 갑자기 유럽식 '공공재 논리'를 적용합니다. 국가가 허용 한 정원 내에서만 의사가 될 수 있도록 진입 장벽을 세워두었으니, 정부가 통제하는 진료 수가를 받아들이고 필수 의료와 지방 의료를 위해 헌신하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교육에 투자하는 주체(개인)와 그 결과물을 통제하려는 주체(국가)가 어긋나 있다 보니, "개인의 자산으로 취득한 면허를 왜 국가가 통제하느냐"는 의사들과 "독점적 권한을 부여했으니 공적 의무를 다하라"는 정부가 매번 정면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현재의 고통스러운 의료 대란은 단순히 의사 수를 몇 명 늘리고 줄이는 '산술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비용 지불 방식과 권한 통제 규칙이 완전히 뒤엉킨 이 거대한 모순을 방치한 대가입니다. 이제 우리는 임시방편식 처방을 멈추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우리는 의사를 시장에서 자유롭게 경쟁하는 '개인 사업자'로 볼 것인가, 아니면 국가가 전적으로 비용을 책임지는 '공공재'로 볼 것인가? 진정한 의료 개혁은 바로 이 의료 시스템에 대한 우리의 사회적 합의와 정의를 명확히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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