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위임한 생명, 권력이 되어버린 면허 4

지역의사제, '땜질'을 넘어 대한민국 의료의 '뼈대'가 되려면

by 홍종원

오늘날 대한민국 의료 현장은 마치 거대한 둑에 생긴 작은 균열을 마주하고 있는 듯합니다. 특히 지방 의료의 붕괴와 필수 의료 인력의 부족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되었습니다. 2026년 현재,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개혁'의 핵심 카드인 '지역의사제'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사람을 특정 지역에 묶어두는 것만으로 충분할까요? 우리는 이제 이 제도를 통해 더 큰 미래를 설계해야 합니다.


​이재명 정부의 지역의사제는 '공공성'이라는 가치를 의료의 중심에 다시 세우려 합니다. 의대 정원 증원분을 지역의사 전형으로 선발하여 6년간의 학비 전액을 국가가 지원하고, 그 대신 10년간 해당 지역에서 의무적으로 복무하게 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만약 이 약속을 어길 경우 의사 면허까지 취소될 수 있다는 강력한 법적 장치는, 의료를 시장의 논리가 아닌 국가의 책임 영역으로 끌어오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시도는 이웃 나라 일본의 사례와 비교해 볼 때 더욱 선명해집니다. 일본은 이미 2007년부터 '지역정원제'를 운영하며 지역 의료 공백을 메워왔습니다. 일본의 제도가 지자체와 학생 사이의 유연한 계약과 정서적 유대에 기반했다면, 한국의 모델은 '지역의사법'이라는 견고한 법적 토대 위에 면허 취소라는 초강수까지 둔 훨씬 강력한 형태입니다. 일본이 겪었던 의무 복무 후 대도시 유출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승부수인 셈입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자 합니다. '지역의사'라는 명칭에는 어딘지 모르게 특정 장소에 고립되어 있다는 수동적인 느낌이 강합니다. 이제 우리는 이들을 '국가 핵심 전략 의사'라는 이름으로 다시 정의해야 합니다. 이들은 단순히 지방의 빈자리를 채우는 임시방편이 아닙니다. 국가가 국비로 직접 기르고 관리하는,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의 가장 단단한 뼈대를 이루는 엘리트 집단이어야 합니다.


​국가 전략 의사들은 초기에는 무너져가는 지역 의료와 필수 의료의 현장을 지키며 시스템을 안정화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그리고 의료 환경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이들의 역할을 감염병 대응 역학조사관, 군 의료 전문가, 혹은 국제 보건 협력을 이끄는 국가 전략가로 유연하게 확장해야 합니다. 지역이라는 물리적 한계를 넘어, 국가가 필요로 하는 모든 곳에 종사하는 '국가 대표 의사'로 키워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확장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결국 그들에게 주어지는 '명예'와 '예우'입니다. 이들의 헌신을 단순히 희생으로 치부하지 않고, 국립대병원 교수직 우선 임용이나 공공기관의 리더급 지위 보장과 같은 파격적인 커리어 로드맵을 국가가 직접 그려주어야 합니다. 국가를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과 그에 걸맞은 사회적 존중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이 제도는 지속 가능한 생명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지역의사제는 결국 대한민국 의료의 근본적인 체질을 바꾸는 실험입니다. 이 실험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강제'라는 사슬보다 '사명감'과 '비전'이라는 날개를 달아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기른 국가 전략 의사들이 전국의 의료 현장을 누비며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날, 비로소 대한민국은 진정한 의료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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