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위임한 생명, 권력이 되어버린 면허 5

의사는 누구인가: 무너진 사회적 합의와 새로운 정의를 위한 질문

by 홍종원

우리는 지금 '의료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의료 개혁 뉴스 속에서 우리는 문득 근본적인 의문을 마주하게 됩니다. "과연 의사란 누구인가?" 단순히 병을 고치는 기술자인가, 고소득 전문직인가, 아니면 국가의 안녕을 책임지는 공적 자원인가. 우리가 겪는 극심한 갈등의 밑바닥에는 의사라는 존재에 대한 우리 사회의 '느슨한 정의'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사실 의사라는 개념은 자연적으로 주어진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시대와 공동체가 필요에 따라 빚어낸 '사회적 합의'의 산물입니다.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은 독특한 이중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병원 건물과 장비는 대부분 민간의 돈으로 마련된 '사유 재산'이지만, 그곳에서 일어나는 진료의 가격(수가)과 서비스 방식은 국가가 결정하는 '공공제'의 성격을 띱니다.


이 구조는 지난 수십 년간 한국 의료의 기적을 일궈냈습니다. '빠르고 저렴한 진료'라는 열매를 맺기 위해, 국가는 의사들에게 면허라는 독점적 권한을 주는 대신 저수가를 견디라는 암묵적 합의를 요구했습니다. 의사들 역시 무한 경쟁의 시장 논리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비급여 진료를 늘리거나 과도한 노동을 감내하며 이 기묘한 시스템의 톱니바퀴가 되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이 오래된 합의는 이제 수명을 다했습니다. 현재의 의료법은 의사를 단순히 '의료와 보건 지도를 임무로 하는 자'라고 정의할 뿐, 그들이 가진 '공적 책무'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명확히 말해주지 않습니다. 정부는 의사를 국가 비상사태에 언제든 동원할 수 있는 '공적 수탁자'로 바라보지만, 현장의 의사들은 자신을 사유 재산을 투자해 일하는 '자유직 전문가'로 정의합니다. 이 정의의 간극이 바로 우리가 목격하는 모든 갈등의 발화점입니다.


이제는 의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눈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개인의 선의나 히포크라테스 선서 같은 도덕성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법적·제도적으로 그들의 위치를 다시 정립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의사를 '국가가 직접 양성하고 책임지는 공적 인재'로 새롭게 정의한다면 어떨까요? 교육 단계부터 국가가 비용을 책임지고 신분을 보장하되, 그에 걸맞은 엄격한 공적 의무를 명문화하는 식입니다.


모든 개혁에는 이해관계의 충돌이 따르며, 타협점을 찾기 위한 긴 인고의 시간과 갈등이 불가피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전제가 있습니다. 어떤 명분과 논리도, 어떤 식의 투쟁도 사람의 생명을 볼모로 삼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갈등은 치열하되 그 끝은 언제나 생명을 향해야 합니다.


권리와 책임이 명확히 맞물린 새로운 계약만이 지금의 공백을 메울 수 있습니다. 구시대의 합의가 저물어가는 지금, 우리는 어떤 의사를 가질 자격이 있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의사들에게 무엇을 내어주고, 또 무엇을 요구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의사라는 개념을 다시 정의하는 일은, 결국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지를 결정하는 일과 같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의사를 어떤 존재로 정의하고 싶으신가요?




연재작 '사회가 위임한 생명, 권력이 되어버린 면허'는 당초 의사 집단의 권위주의와 이익 단체화된 행태를 비판하기 위해 시작했습니다. 환자를 볼모로 기득권을 수호하려는 모습이 마치 견제받지 않는 무소불위의 권력처럼, 반드시 개혁해야 할 대상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생각이 깊어질수록 분노의 화살은 개인이나 단체가 아닌, 얽히고설킨 '의료 시스템의 구조적 모순'을 향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거대한 모순의 뿌리에는 결국 '의사라는 존재를 시장의 개인 사업자로 볼 것인가, 아니면 공공재로 볼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철학의 충돌이 자리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생명을 살리기 위해 현장에서 피땀 흘리는 수많은 의사들의 헌신을 저는 깊이 존경합니다. 그러나 이 일그러진 구조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그들의 숭고한 노력조차 끝내 사회적 질타 속에서 빛을 잃고 말 것입니다. 제가 이 복잡하고 잔혹한 시스템의 실타래를 짚어보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고자 합니다. 이 글에 담긴 내용과 시각은 비전문가인 순전히 저의 개인적인 사유와 관찰의 결과물입니다. 거대한 시스템을 다루기에 분명 제 식견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나 부족한 지점이 있을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부디 그 점을 너그러이 헤아려 읽어 주셨기를 바라며, 이 부족한 글이 우리 의료가 마주한 현실을 함께 고민해 보는 작은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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