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 신비: 신의 목소리에서 알고리즘까지
저녁이 가까워졌다.
연구실 안은 어둑했고,
창밖의 빛은 조용히 사라지고 있었다.
모니터만이 희미한 푸른빛을 뿜어냈다.
수현은 화면을 응시한 채 말했다.
“교수님, 가끔 이런 생각이 들어요.
제가 뭘 고를 때, 정말 ‘제가’ 고르는 걸까요?”
최 교수는 조용히 마우스를 굴렸다.
“그 질문, 요즘 시대에는 꽤 철학적인 질문이죠.
우리는 자유의지를 믿어요.
하지만 알고리즘은 그 자유를 예측 가능한 행동 패턴으로 바꿔버렸습니다.”
“예측 가능한 자유의지라니…
아이러니하네요.”
“그렇죠.
하지만 현실이에요.
우리가 어떤 영화를 좋아할지, 어떤 기사를 클릭할지,
심지어 정치적 입장까지 이미 분석되고 있거든요.
그리고 그 분석은 곧 ‘다음 선택’을 만들어내죠.”
수현은 조용히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생각해 보면, 그는 요즘 유튜브도, SNS도,
거의 ‘추천’되는 것만 보고 있었다.
자기가 고른 것 같지만, 사실은 보여진 것 중에서 고른 것이었다.
이제 알고리즘은 인간의 선택을 돕지 않는다.
그 자체가 선택의 환경을 설계한다.
유튜브가 다음 영상을 정하고,
쇼핑몰이 다음 상품을 보여주고,
포털사이트가 다음 뉴스를 결정한다.
우리는 제시된 것 중에서 고를 뿐.
무엇을 ‘보게 될지’는 이미 정해져 있다.
선택의 본질이 바뀌었다.
이제는 고르는 게 선택이 아니라,
보여지는 게 선택의 시작이다.
수현은 말했다.
“결국, 제가 하는 선택도…
알고리즘이 만들어 놓은 것 중에서 하나 고르는 거네요.”
“그렇죠.
그걸 우리는 ‘자율적 선택’이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설계된 자유에 가깝죠.”
“설계된 자유…”
그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최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선택지를 만든 자가 진짜 권력을 가진 거예요.
선택은 자유의지처럼 보이지만,
무엇을 고르게 만들지를 정하는 힘이 진짜 결정자죠.”
이제는 사람보다 알고리즘이 나를 더 잘 안다고 말하는 시대다.
하지만 그 ‘정확한 판단’은
사람을 움직이게 만들고,
움직임은 곧 예측을 현실로 바꾼다.
예측이 선택을 이끌고,
선택이 예측을 증명한다.
그 반복 속에서 우리는
자유의지의 자취를 점점 잃어간다.
수현은 조용히 말했다.
“교수님,
그럼 우리는 이제… 선택하는 존재가 아니라,
선택 ‘당하는’ 존재가 된 건가요?”
“그래도 선택의 여지는 남아 있어요.
문제는 그 여지를 얼마나 자각하고 있느냐죠.”
“그럼요…
자각하지 못하면 자유도 없는 거네요.”
“맞아요.
보이지 않는 구조를 인식할 수 없다면,
자유란 말도 무의미해집니다.”
수는 중립적이다.
하지만 그 수를 누가 어떻게 사용하는가는
전혀 중립적이지 않다.
우리는 스스로 결정한다고 믿지만,
그 믿음조차 알고리즘이 계산한 결과일 수 있다.
이제, 정말로 물어야 할 것은 이것이다.
“나는 지금,
누가 만든 질문 위에서
대답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