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신이 된 인간, 책임 없는 판단

수의 신비: 신의 목소리에서 알고리즘까지

by 홍종원

컴퓨터 팬이 낮게 울렸다.
최 교수는 책상에 놓인 논문을 조용히 밀어주었다.


“수현 씨, 이 논문 한번 봐요.
AI가 피의자의 재범 가능성을 예측해
실제 형량이나 보석 여부에 영향을 준 사례들이에요.”


수현은 논문의 제목을 읽고 고개를 들었다.
“기계가 사람의 죄를 예측한다고요?”


“정확히는 ‘재범 가능성’을 예측하죠.
예측치가 높게 나오면 가석방이 어렵고,
낮게 나오면 좀 더 관대하게 판단되기도 해요.”


수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근데… 그건 단순한 참고용이 아니라,
실제 판결에 영향을 준 거잖아요.”


최 교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결국 숫자가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 거죠.
하지만 아무도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지려 하지 않아요.”


이제 판단은 숫자 위에서 이루어진다.
신용 등급, 채용 가능성, 보험료 책정, 범죄 위험도.
수치는 객관적이고, 감정이 없으며,
공정해 보인다.


하지만 그 숫자의 바탕은 과거의 데이터다.
그리고 그 데이터는 이미 편견과 불균형을 담고 있다.
특정 인종, 지역, 계층이
더 많이 처벌받고, 더 적은 기회를 받고,
더 높은 위험도로 계산된다.
그건 새로운 차별이 아니라, 기존 차별의 재생산이다.


“교수님,
그럼 이건 AI의 문제인가요?
아니면 그걸 만든 인간의 책임인가요?”


수현의 질문에 최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기계는 판단하지 않아요.
그냥 입력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결과를 낼 뿐이죠.
책임은 결국 인간에게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다들 기계 뒤에 숨습니다.”


“‘AI가 그렇게 말해서’라고요?”


“그 말 한마디면 끝나죠.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판단.
그게 지금의 문제입니다.”


수현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숫자는 책임지지 않는다.
알고리즘도, 기계도, 데이터를 수집한 시스템도
‘판단’은 하지만 ‘양심’은 갖지 않는다.


문제는 인간이다.
인간이 그 판단을 맹신하면서도
그 결과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


신은 인간에게 선택을 요구했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도 함께 지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의 판단자는 기계다.
그리고 기계는 책임을 묻지 않는다.
그 아래에서 인간은
선택을 편하게 만들었지만,
책임은 점점 외면하고 있다.


“이런 사회는… 위험하지 않나요?”


수현의 말에 최 교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숫자에 더 이상 ‘진실’이 아니라
‘권력’이 담기기 시작한 거예요.”


“권력이라뇨?”


“누가 어떤 데이터를 쓰고,
누가 그 알고리즘을 설계하고,
누가 그 판단을 최종 승인하는가.
그게 곧 사람의 삶을 바꾸죠.”


“근데 사람들은 그걸 ‘중립적’이라고 믿잖아요.
수학은 거짓말을 안 한다고.”


“맞아요.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죠.
하지만 숫자를 해석하는 인간은…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어요.”


우리는 신의 자리에 수를 올려놓았고,
그 수가 말하는 대로 믿는다.
하지만 그 수에 대한 책임은
누구도 지지 않으려 한다.


예측은 있다.
판단도 있다.
하지만 책임은 없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직면한
가장 근본적인 윤리적 공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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