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 신비: 신의 목소리에서 알고리즘까지
모니터에는 병원의 대기 명단이 떠 있었다.
수현은 화면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교수님,
여기 보세요.
AI가 환자의 생존 확률을 예측해서
수술 순서를 정하는 시스템이라고 해요.”
최 교수는 눈을 가늘게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요즘 병원에서는 점점 이런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어요.
심장 수술, 장기 이식, 응급실 환자 분류까지.
누가 먼저 치료받을지를 숫자가 정하죠.”
“근데 그건 생명을 고르는 일이잖아요.
정말… 숫자로 해도 되는 걸까요?”
“문제는, 이미 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걸 ‘객관적’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거고요.”
숫자는 이제 생명을 나눈다.
예전엔 의사가 직접 판단했다.
경험과 직관, 그리고 눈빛.
그 사람의 상태를 보고, 숨소리를 듣고,
때로는 인간적인 감각으로 ‘우선순위’를 결정했다.
하지만 이제는 수치가 말한다.
회복 가능성 83%.
수술 후 생존 예측률 67%.
입원 후 회복 소요 일수 예상 19일.
이 숫자들이
삶과 죽음 사이에 선 인간의 앞에 놓인다.
수현은 조용히 말했다.
“그 숫자가 말하는 게…
과연 ‘공정’일까요?
아니면, 그냥 ‘효율’일까요?”
최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가장 큰 문제예요.
수는 공정해 보이지만,
실은 시스템의 효율을 따지는 기준에 가깝죠.
누구를 먼저 살릴 수 있는가가 아니라,
누가 더 ‘낫게’ 살 수 있는가를 판단하니까요.”
“그럼… 숫자에게 생명을 맡기는 건
결국 인간이 편해지기 위한 선택이었네요.”
“그렇죠.
판단의 부담을 덜기 위해
기계에게 책임을 넘긴 겁니다.”
의료 알고리즘은 인간의 생명을 분류한다.
가장 급한 사람,
가장 회복 가능성이 높은 사람,
가장 치료 효율이 좋은 사람.
누가 먼저 수술대에 오르고,
누가 뒤로 밀리는지는
점수와 확률, 수치로 결정된다.
표면적으로는 모두 ‘정확’하고 ‘합리적’이다.
하지만 이 판단에 윤리는 없다.
생명을 둘러싼 결정에서
‘가장 인간적인 것’이 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교수님,
이건 그저 기술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윤리의 문제 아닌가요?”
수현의 질문에
최 교수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숫자 자체는 중립적이지만,
그걸 사용하는 인간은 중립적이지 않죠.
그리고 사람들은 자꾸 숫자 뒤에 숨으려고 해요.”
“기계가 판단한 거니까, 어쩔 수 없다고 말하겠죠.”
“그 말은… 너무 자주 쓰이는 핑계가 됐죠.
예전엔 신의 뜻이라며 책임을 피했고,
지금은 알고리즘이라며 고개를 돌립니다.”
우리는 숫자에게 생명을 묻는다.
그리고 숫자는 냉정하게 답한다.
그 답은 빠르고 정확하지만,
따뜻하지 않다.
생명은 통계가 아니다.
확률로는 설명되지 않는 고통이 있고,
수치로는 표현되지 않는 가치가 있다.
하지만 지금의 판단 구조는
그 모든 것을 ‘숫자화’한다.
그리고 인간은,
그 수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점점 더 망설이지 않게 되었다.
수현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럼...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어떤 감각을 잃어가고 있는 걸까요?”
“맞아요.
우리는 결정은 쉽게 하게 되었지만,
그 결정이 만들어내는 책임감은 잃어가고 있어요.”
이제 신은 생사의 판단에서 물러났다.
그 자리를 숫자가 대신 차지하고 있다.
우리는 수에 기대어 결정하지만,
그 결정의 무게를
더 이상 인간이 감당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