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함께 세상으로

천천히, 함께 세상으로

by Everett Glenn Shin

조금씩 걷기 시작했다.
처음엔 집 안을 도는 것도 벅찼지만, 그래도 한 걸음, 또 한 걸음을 떼었다.
병원 복도보다 긴 거리를 걸을 수 있게 된 건 퇴원 후 몇 주가 지나서였다.
그때의 걸음은 느리고 불안했지만, 발을 내딛을 때마다 세상과의 거리가 조금씩 좁혀지는 기분이었다.
창문 너머로만 보던 거리, 사람, 나무, 햇빛이 이제는 내 앞에 있었다.

혼자 외출하기엔 아직 어려웠다.
걸음 속도가 너무 느렸고, 조금만 무리해도 다리가 금세 풀렸다.
그럴 때마다 친구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내 휠체어를 밀고 식당으로, 카페로, 공원으로 나섰다.
처음엔 미안했다.
내가 없었다면 그들은 더 먼 곳으로, 더 자유롭게 갔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미안함이 고마움으로 바뀌었다.
그들은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저 ‘함께 걷는 사람들’로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공원의 벤치에 앉아 햇살을 맞으며 커피를 마셨던 그날,
세상의 소음이 이상하게 다정하게 들렸다.
멀리서 아이들이 웃는 소리,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 커피잔이 부딪히는 소리까지
그 모든 것이 오랜만에 내 안을 두드렸다.
바람이 볼을 스칠 때마다, 나는 아직 살아 있음을,
그리고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느꼈다.

그날 이후, 나는 하루에 몇 걸음이라도 더 걷기로 했다.
걷는다는 건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는 연습이었다.
다시 웃고, 다시 느끼고, 다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일.
그렇게 나는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다시 살아가기 위해,

그리고 다시 연결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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