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

프롤로그

by Everett Glenn Shin

정신을 차린 뒤 처음 돌아온 건
배고픔이 아니라 맛이었다.

혀끝에 닿은 차가운 물이
아, 하고
몸 안으로 들어오던 순간.
그제야 알았다.
내가 아직 여기에 있다는 걸.

된장국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우유는 흰 얼굴로
조용히 잔을 채웠다.
국밥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는 듯
뜨신 기운을 풍기며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릇 앞에 앉아
살아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한 숟갈을 더 뜰 수 있겠다고,
그 정도를 생각했을 뿐이다.

이 시들은
잘 살아보겠다는 다짐 대신
삼키고, 씹고, 넘기며
다시 감각을 배우는 기록이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것들,
말은 없지만
속을 먼저 아는 것들.

지금 내 손에 남은 건
거창한 의지가 아니라
아직 잊지 않은 맛 하나.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릇을 비우기보다
살아 있다는 쪽으로
천천히 맛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