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nta Aug 12. 2024

은빛쓴맛그물버섯

Sutorius eximius

은빛쓴맛그물버섯 Sutorius eximius

저번주 충청북도 영동군 민주지산에서 독특하게생긴 그물버섯류를 발견하였다. 나는 그물버섯류에 아직 익숙하지 않아 동정을 할때마다 부끄러움을 종종 느끼곤 하지만, 이날 만난 그물버섯은 워낙 독특한 생김새를 갖고 있어 단번에 은빛쓴맛그물버섯임을 알 수 있었다. 은빛쓴맛그물버섯은 여러가지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다. 쓴맛그물버섯속(=Tylopilus)의 포자무늬 색깔을 갖고있으며, 껄껄이그물버섯(=Leccinum)처럼 거친 무늬의 대를 갖고 있기도 하다. 이 아리송한 버섯은 실제로 쓴맛그물버섯으로도, 껄껄이그물버섯으로도 분류된적이 있었다. 국내에서 이 버섯을 분류했을 때는 쓴맛그물버섯속(=Tylopilus)에 해당됐었는지, 은빛쓴맛그물버섯이라는 국명을 갖게 되었다. 이 버섯은 2012년 분자계통분류를 통해서 쓴맛그물버섯이나 껄껄이그물버섯과는 다른 계통을 이루고 있는 것이 밝혀졌다. 그렇게 은빛쓴맛그물버섯은 Sutorius라는 속명을 갖게 되었다.


찰스 C. 프로스트

학명 Sutorius eximius를 살펴보면, 속명 Sutorius는 Sutor라는 라틴어에(-ius)라는 접미사가 붙은 구조인데, 여기서 Sutor는 라틴어로 구두장이를 뜻하고, 종소명 eximius는 우수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도대체 이 버섯이 구두장이와 무슨 연관이 있길래 구두장이라는 단어가 들어가게 된걸까?그 이유는 이 버섯을 처음 기술한 미국의 진균학자, Chales Christopher Frost(1805~1880)에게 있다. 찰스 C. 프로스트의 인생을 요약하자면, 15살 때 선생님에게 자로 맞고 학교를 그만두었는데, 이때부터 구두장이였던 아버지의 사업 도와주기 시작했다. 그러다 자연과학에 흥미가 있었던 찰스 C 프로스트는 식물학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이끼와 지의류를 연구하기 시작하다가 나중에는 Bolete, 즉 그물버섯류를 연구하였다. 그의 그물버섯 연구에는 Boletus robustus라는 종을 기술한 성과도 있었는데, 이 버섯이 바로 현재 은빛쓴맛그물버섯(=Sutorius eximius)으로 분류되는 종이다. 즉, 찰스 C. 프로스트 라는 균학자를 기리기 위해 지어진 학명인 셈이다.

국명이 다소 어이가 없다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은빛'쓴맛'그물버섯이니까 다른 쓴맛그물버섯류 처럼 조직에서 굉장한 쓴맛이 날 줄 알았다. 이 특징을 통해 다소 짓궂은 장난을 치고 싶은 생각에, 같은 실험실 선배한테 버섯을 살짝 뜯어서 혀에 대보라고 했다.(논란의 여지가 될 수 있겠다만, 몇몇 그물버섯종류는 조직을 혀에 대서 맛을 보는것이 동정 키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전문가가 아니면 하지 않을 것을 권장함) 선배는 사무치는 강렬한 쓴맛에 한껏 일그러진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역정을 낼 줄 알았으나, 아무런 맛이 안난다고 한다. 다소 싱거운 반응에 혹시 선배가 쓴맛이 나도 안나는 척 하는건가 생각이 들었다. 확인 해 보기 위해 나 또한 조직을 살짝 뜯어 혀에 대보았는데, 아무런 쓴맛이 나지 않았다. 이게 뭐람? 이 버섯은 은빛이 나지도 않고, 쓴맛도 나지 않는다.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와 관련도 없으며 제국도 아니었던 신성로마제국을 떠올리게 만드는 버섯이다.

의외로 식용

 이 버섯을 처음으로 기술한 찰스 C 프로스트는 은빛쓴맛그물버섯에 대해 "초콜릿색이고 육질이 많으며 너무 즙이 많아서 말리고 보존하기 어렵다" 라는 평을 남겼다. 말 그대로 살이 두껍고 통통한것이, 다소 식욕을 떨어뜨리는 색만 제외하면 맛있을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은빛쓴맛그물버섯은 한때 식용으로 여겨 졌다고 한다. 그러나 북동부 북미에서 여러 중독사례가 보고되었으며, 증상으로는 구토, 설사, 메스꺼움 등이 발생한다고 하니, 사람에 따라 위장계 중독을 일으킬 수 있는 준독성 버섯이라고 보는것이 적당할 듯 하다. 모 버섯 애호가에 의하면, 다른 그물버서 종류에 비해 끈적임이 덜하며, 특별한 향은 없고 다른 그물버섯류와는 다르게 벌레들이 잘 꼬이지 않는다고 한다. 보기에는 사람 여럿 잘 죽이게 생긴 버섯처럼 생겼지만, 식용으로써 많은 매력을 갖고 있는 은빛쓴맛그물버섯. 언젠가 다시 만나면 한번 맛이나 봐야겠다.

2024.08.12

@manta_fungus

작가의 이전글 오이꽃버섯, 그 정체는 무엇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