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의 소찬
지난 토요일, 평소와 다름없이 오후 2시까지 수업을 마쳤다.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 미옥이를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그런데 남편이 갑작스럽게 스케줄 조정을 요구해 왔다. 가족의 요청도 중요하지만, 이번엔 내 마음을 따랐다.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우리 집은 사연이 많은 집이다. 지금은 마당을 강아지 산책 공간으로 빌려주는 중이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다섯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여름이면 지하수로 물총 싸움을 하고, 마당에 텐트를 치고 별을 보며 밤을 새우기도 했다. 누군가는 마당을 만끽했지만, 벌레를 무서워해 여름을 두려워한 아이도 있었다. 그런 다채로운 추억이 깃든 공간을 이제는 ‘마당스페이스’라는 앱을 통해 새로운 이들에게 열어두고 있다.
그 앱을 통해 마당을 찾는 사람들 중엔 특별한 인연들도 있다. 지난주 토요일, 나 역시 마당에서 벌어진 한 편의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되었다.
60대 중반의 한 여인이 방문했다. 겉보기에 부족함 없어 보였지만, 그녀는 한때 삶이 공허하고 슬펐다고 했다. 우울증이었다. 그러던 중, 아파트 주변 산책길에서 만난 레트리버가 그녀의 일상을 바꾸었다. 따뜻하고 단단한 그 리트리버는 그녀의 삶에 작은 설렘을 안겨주었다고 했다. 그 개와의 산책이 기다려지고, 찍은 사진을 다시 보는 시간이 기쁨이 되었다고.
리트리버의 견주와의 대화가 쌓이면서, 또 다른 사람과의 만남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날 마당에는 젊은 커플도 함께 왔다. 유기견을 입양해 정성껏 키우고 있다는 그들의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사실 이 모든 상황을 남편이 먼저 전해 들었고, 나는 친구와 즐거운 대화를 이어가던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고기를 구워야겠다”는 말에, 무언의 호출처럼 들렸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삼겹살을 두툼하게 썰고 고구마를 챙겨 집으로 향했다.
마지못해 귀가했지만, 여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마음이 따뜻해졌다. 이전에 봤던 차가운 인상이 사라지고, 사랑에 빠진 듯한 귀여운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덕분에 기꺼운 마음으로 저녁을 준비할 수 있었다.
감자와 멸치, 다시마로 국물을 낸 된장찌개. 누구를 위해 만들었느냐에 따라 음식의 맛은 달라진다. 요리를 해본 사람은 안다. 같은 재료, 같은 레시피라도 마음이 담기면 맛도 달라진다는 걸. 그날의 찌개는 정말이지 기가 막혔다. 손님들도 “요즘 이런 맛, 어디서 못 본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식사 내내 이어진 이야기, 그리고 마당에서 뛰노는 마롱이와 리트리버. 견주들의 환한 얼굴과 강아지들의 신나는 표정. 풀 내음, 새소리, 마당의 평화로운 공기가 모두를 감쌌다. 그 순간만큼은 시간도 천천히 흘러가는 듯했다.
60대 여인이 리트리버의 견주를 다정하게 챙기는 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궁금해졌다. 이 생기는 어디서 온 걸까? 어쩌면 ‘사랑’이라는 감정에서 비롯된 건 아닐까?
리트리버가 됐든, 견주가 됐든—
사랑은, 참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