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우리, 조금은 어른이 된 이야기
제목: 일곱 식구의 크리스마스 – 다시 만난 우리, 조금은 어른이 된 이야기
크리스마스가 되면 늘 떠오르는 것이 있다. 가족, 그리고 예배.
올해 성탄절은 그 두 가지가 모두 내게 특별했다. 바로 일곱 식구가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큰 기적 같았다.
군 입대 이후 한 자리에 모이기 어려웠던 아들들. 큰아들은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중, 비싼 항공권을 스스로 마련해 귀국했다. 막내아들은 소중히 아껴두던 해병대 첫 휴가를 크리스마스 가족 모임에 맞췄다. 그렇게 우리는 오랜만에 일곱 명, 완전체가 되었다.
인천공항에서 만난 아들의 얼굴은 피곤함이 역력했다. “한국이 낯설다”는 그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집에 도착해 나눈 저녁 식사 시간, 분위기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아이들은 각자의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첫째 딸은 결혼 준비와 경제적 부담을,
둘째 딸은 직장에서의 답답함을,
셋째 딸은 복학과 자취 준비의 현실을,
큰아들은 해외 생활과 복학 사이의 고민을,
막내는 군 제대 후 대학 자퇴에 대한 결심을...
한 사람씩 꺼내는 이야기 속에 나는 어느새 머리가 지끈거렸다. 부모로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해야 할 성탄절 저녁은, 어쩐지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듯했다. 그들의 이야기는 절망이라기보단, 지금 세대의 현실 그 자체였다.
다음 날, 아이들끼리만의 모임이 계획되었다. "엄마 아빠는 빠지고 우리끼리만 만날게요." 순간 서운했지만, 그들에게도 자신들만의 대화가 필요하다는 걸 이해했다. 마니토를 뽑고, 마음이 가는 선물을 준비하기로 했다고 했다.
두 번째 가족 회식은 집 근처 돼지고기 두루치기 식당에서. 김치찌개가 그리웠다는 큰아들의 의견을 반영한 메뉴였다. 돌아와 마니토 선물 교환식이 이어졌다.
첫째 딸은 막내에게 멋진 캡모자를,
막내는 누나에게 스탠리 리스 스타벅스 컵을,
둘째는 셋째에게 목도리를,
그리고 큰아들에게는 로또 2장을 선물했다.
"당첨되면 가족에게 몇 퍼센트 나눌 거야?"
30%라는 숫자가 나오자, 나는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우리 세대 같으면 ‘부모님께 다 드릴게요’라는 립서비스쯤은 할 법한데 말이다. 기대를 하지 않기를 잘했다는 묘한 안도감도 들었다. 물론 결과는... 꽝이었다.
큰아들은 직장 다니는 둘째 누나에게 고급 다이어리와 볼펜을 선물했다. 내가 할 일은 없었다. 그저 조용히 그들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이 한상에 둘러앉아 웃고 떠드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했다.
첫째 날의 무거웠던 분위기와 달리, 이 날의 대화는 따뜻했다. 서로를 챙기고 위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현실은 여전히 녹록지 않지만, 그 안에서 아이들은 자라나고 있었다.
둘째 딸은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 일이 힘든 건 견디겠지만, ‘보람 없음’이 참기 어렵다고 했다. 그 말에 첫째 딸도 과거를 꺼냈다. 첫 직장 시절, 엄마 차로 먼 출퇴근을 하다, 결국 홍수로 차가 침수되면서 퇴사하게 됐다고. 그간 몰랐던 딸의 진심과 아픔을 처음 들었다. 퇴사를 쉽게 결정했을 거라 오해했던 내 마음이 부끄러워졌다. 모든 말에는 이유가 있다는 걸 다시 배운 순간이었다.
간디의 말이 떠올랐다.
“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보기 전까지는 판단하지 말라.”
막내는 군 제대 후 복학하지 않고 평택의 공장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 돈을 벌고 싶단다. 용돈을 많이 주지 않은 나의 양육 방식이 영향이 있었을까. “부모님께 도움을 드리고 싶어요”보다는, “내가 벌어서 내 필요를 채우고 싶어요”라는 말이 솔직했고 씁쓸했다. 그래도 그런 선택마저 존중해주고 싶었다.
솔직히 처음엔 내 양육이 실패한 것 같아 괴로웠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5남매, 그리고 남편과 함께했던 삶은 나를 더 자유롭게 만들었다. 각자의 인생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눈, 조언보단 공감으로 머무르는 태도, 그리고 기도의 자리에서 주님께 맡기는 마음까지.
조금씩 생겨난 나만의 평정심이다.
아직도 나는 ‘겪지 않고 아는 것’을 지혜라고 믿는다.
하지만 삶은 언제나 그 지혜보다 조금 더 더디게 찾아온다.
결과와 상관없이 지금 이 모습 그대로 감사하게 되는 날,
그날이 어서 오기를 기다리며, 오늘도 마음에 작은 촛불을 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