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부상 같다는 셋째 딸

기숙사로 떠나는 딸의 모습을 보고

by 한정희

결혼 후 30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5남매가 각자의 삶을 위해 떠나고, 지금은 큰딸과 남편만이 집을 지키고 있다.
큰딸은 결혼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집에 들어왔고, 둘째는 회사 근처로, 셋째와 넷째는 대학 근방으로, 막내 다섯째는 해병대에서 복역 중이다.
넷째의 간호실습을 격려하고, 셋째 아들의 복학을 기념하며 오랜만에 시끌벅적한 저녁 식사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언제나 좋다. 하지만 각자의 현실 속에서 부딪치는 어려움들을 들을 때마다 마음 한쪽이 답답해진다.


첫째 딸은 지금 하고 있는 교육사업의 방향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고, 둘째 딸은 직장에서의 대인관계로 지쳐 있고, 복학한 셋째 아들은 공부에 집중이 안 된다며 10시간 지속되는 집중력 향상제를 먹고 싶다고 한다. 간호학과 실습 중인 넷째 딸은 시간도 돈도 없어서인지 늘 같은 옷만 입는다고 남자친구가 물어봤다고 했다.
한바탕 웃음이 지나간 자리에, 각자의 기도 제목을 나눴다. 조금 전의 가벼운 대화와는 달리, 아이들은 하나같이 부모의 건강이 제일 걱정된다고 했다. 자신들도 건강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건강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말을 남기고,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아쉬운 이별을 했다.


보부상 셋째 딸
먼 거리가 아니면 숙소까지 태워주고 싶었지만, 셋째 딸에게는 지하철에서 내려 택시를 타라며 이만 원을 접어 손에 쥐여줬다. 식사를 대충 때운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려, 뭐라도 사 먹으라는 마음으로 건넨 돈이었다.
"엄마도 없는데 됐어요."
딸의 그 한마디에 목이 잠깐 메었다.
지하철역 가까이 오자 딸은 커다란 보따리와 음식 보냉 백을 두 손에 들고 씩씩하게 총총 사라졌다. 집에 돌아오자, 나와 같은 아쉬운 마음을 느꼈던 둘째 딸이 가족 단톡방에 사진 한 장을 올렸다. '보부상 같다'는 말과 함께.
5남매 중 하나로 태어나, 자신의 몫은 스스로 챙겨야 한다는 절박함 속에서 독립심을 키워온 아이다. 어릴 때부터 자기 몫을 따로 챙겨두던 아이, 심지어 아이스크림도 서랍 속에 아껴두던 그 아이가, 이제 옷가지와 책을 메고 지하철 승강장을 오른다. 대견하면서도, 충분히 챙겨주지 못했다는 마음이 그 뒤를 따라갔다.

셋째 딸을 지하철에 내려두고
돌아오는 차 안, 뒷좌석에서 아이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꺼냈다. 둘째 딸은 '자취생의 미학'이라며 웃었다. 먹을 게 없어서 냉동 삼각김밥에 물을 조금 부어 볶아 먹었다고.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사업에 집중하고, 남편과의 관계에 적응하느라 버거웠던 그 시절, 아이들도 나름의 방식으로 조용히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는 그런 이야기를 나눌 시간조차 없었으니, 다들 별 어려움 없이 잘 지내는 줄만 알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이들의 어려움을 그때 직접 보고 알았더라면 오히려 더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경제적, 행정적, 사회적 역할을 담당했던 조선시대의 보부상은 어떤 마음으로 짐 보따리를 짊어지고 새로운 세계로 향했을까. 그리고 오늘 우리 아이들이 지고 있는 짐 보따리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기대와 설렘이 가득한 무게가 아니라, 넘어야만 하는 산처럼 느껴지는 무게. 지금 이 시대의 20~30대 젊은이들이 그 무게를 지고도 힘차고 기대되는 마음으로 산을 넘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세대가 살맛 나는 삶을 경험할 수 있을지, 뾰족한 답을 찾지 못한 채 그저 마음만 무겁다. 부모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기성세대로서 그들에게 튼튼한 지렛대가 되어주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데, 오늘 밤은 그 방법을 모르겠다는 솔직한 고백만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