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은 믿음의 재료일 뿐 결론이 될 수 없다

아이의 하루를 엑셀 칸에 가두지 마십시오

by 한정희


28년이라는 시간 동안 수많은 아이와 부모를 만났다. 교육 현장은 늘 '현상'으로 가득 차 있다. 아이의 지체됨, 학습의 부진, 정서적 불안정. 부모들은 그 현상을 분석하며 불안해하고, 교사들은 그 데이터에 기초해 대안을 찾는다. 하지만 나는 언제부터인가 그 '피조물의 논리'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현상을 분석하는 것은 이미 일어난 과거를 뒤쫓는 일이다. 하지만 창조주의 형상을 닮은 교육자는 현상을 해석하는 자가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비전을 선포하여 실제로 만드는 '창조적 주체자'여야 한다.


엑셀 시트 속에 갇힌 부모의 불안
오늘 색채 수업에서 예전에 상담을 왔던 한 어머니를 다시 만났다. 그분은 나를 보며 뜻밖의 이야기를 건네셨다.
"원장님, 평소 일상에서의 모습도 좋지만, 아이들을 지도하실 때 보면 눈이 정말 반짝반짝 빛나세요. 본인은 모르셨죠?"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자문해 보았다. 내 눈은 왜 빛나고 있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내 눈앞에 있는 아이의 '현재'가 아니라, 내 안에 확정된 그 아이의 '완성된 미래'를 보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의 하루를 15분 단위로 쪼개어 엑셀 시트에 박아 넣는 부모들을 만난다. 빼곡한 칸을 채워야만 안심하는 그들의 눈빛에는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는 지독한 불안이 서려 있다. 그들은 아이의 오늘을 분석하고, 부족한 데이터를 보완하기 위해 더 많은 학원과 학습지를 투입한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그것은 철저히 '피조물의 논리'다. 보이는 현상에 끌려다니며 아이를 혹사하는 것은, 아이의 본질을 보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결핍만을 편집증적으로 수집하는 행위다.


무화과나무의 마름, 그리고 내 안의 권세
성경에서 무화과나무가 마른 사건은 단순히 기적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권세가 현상을 압도하여 결과물로 드러난 '전시물'이다. 나 역시 아이를 볼 때, 아이의 부족함이나 속도에 내 감각을 내맡기지 않는다. 내 안의 믿음은 이미 그 아이가 '훌륭하게 된 결론'을 알고 있다.


현실의 아이가 조금 느리게 걷거나 뒤처지는 '소음(Noise)'을 낼 때, 나는 내 육체의 감각을 부인하는 인내를 선택한다. 그리고 내 안에 계신 예수의 권세로 선포한다.
"너는 이미 온전한 실력을 곧 갖게 될 사람이다."
내 생각이 아니 믿음이 현상으로 보이게 될 그 경이로운 과정을 매일 꿈꾸고 본 게 된다.


내 안의 믿음이 아이에게 전달되는 과정은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믿음'의 과정이다. 내가 아이를 '문제아'가 아닌 '완성된 비전'으로 대할 때, 그 믿음의 에너지가 아이의 영혼 속에 물리적인 실체로 파고든다.
교사가 현상에 끌려다니지 않고 중심을 잡을 때, 아이는 비로소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발견한다. 지체됨은 결코 결론이 될 수 없다. 그것은 단지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는 영광이 드러나기 위한 재료일 뿐이다.


나는 오늘도 엑셀 너머를 본다
오늘도 나는 아이들의 눈을 바라본다.
나의 반짝이는 눈빛은, 아직 아이 자신도 보지 못한 자신의 '가장 찬란한 미래'를 미리 보고 건네는 신뢰의 눈빛이다


엄마의 엑셀 시트를 잠시 덮어도 좋다. 지금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스케줄이 아니라, 아이의 미래를 미리 보고 웃어주는 아빠와 엄마의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