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지? 늦지 않게 들어와.”
현관문 앞에서 신발 끈을 묶는 딸의 등 뒤로 나는 매일 같은 문장을 던진다. 28년 동안 수많은 아이를 가르치고 부모를 상담해 온 ‘교육 전문가’인 나도, 집에서는 그저 시곗바늘에 예민해지는 겁 많은 엄마다. 내 목소리는 평소보다 조금 더 예민하고 낮게 깔린다. 그것이 일종의 방어막이라도 되는 것처럼.
딸이 고개를 돌려 나를 빤히 바라본다. 그러더니 아주 건조하게, 마치 오늘의 날씨를 말하듯 한마디를 툭 던진다.
“엄마, 엄마가 생각하는 그런 일은 대낮에도 일어나.”
순간, 거실의 공기가 싸해했다. 내 생각을 읽고 있었나? 논리적으로 반박할 틈조차 주지 않는 명확한 팩트였다. 나는 구두 주걱을 든 채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우리는 종종 ‘시간’을 ‘안전’과 동일시한다. 해가 지기 전에 돌아오면 위험을 피할 수 있을 것 같고, 정해진 시간 안에 아이를 가두어 두면 불행이 비껴갈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시간을 관리하고, 시계를 확인하며 안도한다.
하지만 딸의 그 문장은 내가 붙잡고 있던 시간이라는 방패를 단숨에 깨뜨렸다. 생각해 보면 내가 피하고 싶었던 것은 외부의 실제적인 위험이 아니라, 내 마음속의 ‘불안’이었다. 나는 안전을 시간 속에 억지로 밀어 넣으려 애썼지만, 아이는 이미 세상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있었다.
생황이 문제가 아니고 마음에 따라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나는 두려움을 키우는 비관을 하는것이 아니다, 통제할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엄마가 되고 있는 중이다
그날 이후, 나의 기도는 조금 달라졌다.
“우리 아이를 지켜주세요”라는 간절함 대신, “어떤 상황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판단할 수 있는 지혜를 주세요”라고 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말한다. “늦지 않게 들어와.”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말이 세상을 막아주는 주문이 아니라, 흔들리는 나의 마음을 겨우 붙들어주는 외마디 문장이었다는 것을.
“나는 시간을 통제하여 불안을 잠재우려 했고, 아이는 세상을 이해하며 현실을 걷고 있었다.”
[작가의 말]
28년 차 교육 전문가이자 엄마로 살며, 정답은 늘 제 곁에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제 세계관을 흔드는 예리한 통찰은 현관문 앞에서 마주한 딸아이의 무심한 한마디에서 시작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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