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유독 마음의 발을 헛디디게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딱히 악의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가 던진 말 한마디는 체한 듯 얹히고 함께 있는 공기 속엔 늘 팽팽한 긴장이 서립니다.
처음엔 그저 '악연'이라 생각했습니다. 성격이 맞지 않으니 피하는 게 상책이고, 내 감정을 소모하면서까지 곁에 둘 필요 없는 존재라고 선을 그었죠.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문득 뒤를 돌아보니 기묘한 사실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내 삶을 송두리째 바꾼 결정적인 순간마다, 나를 편안하게 해 준 이들이 아닌 나를 '불편하게 했던 그 사람'이 서 있었다는 사실을요.
혼란이 아니라, 서로를 증명하는 힘
그 답을 찾은 곳은 뜻밖에도 색채심리학 수업 시간이었습니다. 교수님이 칠판에 적으신 단어, '보색(Complementary Color)'. 색상환의 정반대 편에 위치해 함께 있을 때 가장 강렬한 대비를 일으키는 관계를 뜻합니다.
"보색은 서로를 밀어내는 색이 아닙니다. 오히려 서로를 가장 선명하게 '완성'해주는 관계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 한구석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내가 오랫동안 '고난'이라 이름 붙였던 누군가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그토록 이해되지 않던 말투와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방식들. 만약 그가 나를 괴롭히기 위해 나타난 빌런이 아니라, 무채색으로 흐릿하게 살던 나를 가장 선명하게 증명해 내기 위해 배치된 '보색'이었다면 어땠을까요?
비슷한 색 안에는 '나의 확장'이 없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나를 닮은 '유사색'의 관계를 탐닉합니다. 비슷한 취향, 비슷한 가치관, 비슷한 상처를 가진 사람들. 그 안은 따뜻하고 안전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안락함 속에서는 어떤 폭발적인 변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비슷한 색끼리는 서로를 부드럽게 감싸 안을 뿐, 상대의 존재감을 돋보이게 하지는 못합니다. 갈등이 없으니 상처받을 일도 없지만, 내가 가진 세계의 지평이 넓어지는 경이로운 경험 또한 누릴 수 없습니다.
나를 흔들어 나를 깨우는 존재
보색은 확실히 피곤합니다. 눈이 시릴 만큼 강렬하고, 때로는 시각적 피로감을 줄 정도로 자극적이죠. 보색 같은 사람은 나의 사각지대를 강제로 비추고, 내가 필사적으로 숨겨온 열등감을 건드리며, 견고하게 쌓아 올린 나의 기준을 사정없이 흔들어놓습니다. 그래서 아프고, 그래서 도망치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제야 깨닫습니다. 그가 나를 흔든 것이 아니라, 내가 고집스럽게 붙들고 있던 낡은 껍질들이 그의 존재라는 강렬한 빛 앞에서 균열을 일으키고 있었다는 것을요. 그 긴장감 넘치는 마찰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나의 편협함을 버리고, 나의 색깔을 더 짙게 다듬을 수 있었습니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잠언 27:17)
당신의 보색을 긍정하기를
오늘도 당신을 유독 불편하게 만드는 누군가가 있나요? 그를 단순히 '피해야 할 문제'로만 치부하지 마세요. 어쩌면 그는 당신이라는 원석을 깎아내어 가장 눈부신 광채를 끌어내기 위해 찾아온, 우주의 세밀한 설계일지도 모릅니다.
보색은 나를 부정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나를 비로소 '나답게' 완성해 주는 단 하나의 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