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비전센터에서 색채심리학 강의를 듣던 날이었다.
강의 중에 ‘색종이 가족화’라는 활동을 했다.
색종이를 찢어 가족을 표현하는 작업이었다.
모양도 자유, 색도 자유.
설명도 없이 그냥 마음이 가는 대로 선택하라고 했다.
나는 별생각 없이 색을 골랐다.
그냥 눈에 들어오는 색, 손이 가는 색을 집어 들었다.
그렇게 완성된 한 장의 그림.
그런데 강의가 이어지면서
그 그림이 단순한 작업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색은 생각보다 정직했다
강사는 말했다.
사람이 고르는 색에는
지금의 상태와 관계, 그리고 흐름이 담겨 있다고.
나는 내 그림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가족 각각의 색을
하나씩 다시 읽어보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남편의 색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를 고난이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오랫동안 남편을 ‘어려움’으로 느껴왔다.
맞지 않는 부분들,
이해되지 않는 방식들,
부딪히는 순간들.
그 모든 것들이 쌓이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그를
‘나를 힘들게 하는 존재’라고 정의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아니었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분명 그랬다.
그런데, 보색이라는 말을 들었다
강사는 색의 관계를 설명하며
‘보색’이라는 개념을 꺼냈다.
서로 반대에 있는 색.
그래서 부딪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서로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게 하는 관계.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내 그림 속 색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 색은, 나를 보완하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남편의 색은
내 색의 정확한 반대편에 있었다.
부딪히는 색.
편하지 않은 색.
그런데 동시에,
내 색을 가장 또렷하게 만들어주는 색.
그때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스쳤다.
나는 그를 고난이라고 불렀지만,
그는 어쩌면 나를 완성하는 색이었을지도 모른다.
고난이라고 믿었던 시간들
돌이켜보면
나는 ‘편안함’을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했다.
나와 잘 맞으면 좋은 사람,
나를 불편하게 하면 힘든 사람.
그런데 그 기준으로 보면
성장은 일어나지 않는다.
편안함은 유지되지만,
확장은 일어나지 않는다.
보색은 나를 넓히는 관계였다
보색은 편하지 않다.
눈에 확 들어오고, 때로는 부담스럽다.
하지만 그 색이 있을 때
다른 색이 살아난다.
내가 보지 못했던 부분이 드러나고,
내가 부족했던 부분이 채워진다.
나는 그동안
나를 힘들게 하는 요소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나를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붙잡아 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걸
그날 처음 이해했다.
그래서 생각이 바뀌었다
고난이 사라져야 내가 편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 고난이
나를 어떤 방향으로 붙잡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순간,
삶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이제 나는 조금 다르게 본다
여전히 모든 것이 편하지는 않다.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순간도 있고,
부딪히는 일도 있다.
하지만 예전과 한 가지가 다르다.
나는 더 이상 그것을
‘없애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함께 있어야 완성되는 색들이 있다
삶에는
혼자서는 완성되지 않는 색들이 있다.
부딪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서로를 드러내는 관계.
불편한 것 같지만
나를 균형 있게 만드는 요소.
이제 나는 안다.
고난이 나를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어쩌면 나를 지켜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 로마서 8:28
한 줄로 남기고 싶은 말
나는 그를 고난이라 불렀지만,
그는 나를 완성하는 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