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열치열
새벽 두 시였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집 안은
내가 원하던 것처럼 완벽하게 조용했다.
그런데 조용하지 않았다.
삐— 도 아니고, 웅— 도 아닌,
딱히 이름 붙이기 어려운 그 소리가
귀 안쪽 어딘가에서 울리고 있었다.
처음엔 밖에서 나는 소리인 줄 알았다.
창문을 확인했다. 닫혀 있었다.
남편이 코를 고는 건가 싶었다. 조용했다.
소리는 내 안에 있었다.
없애려 할수록, 더 선명해졌다
다음 날부터 나는 조용한 상황을 피했다.
설거지를 하면서 유튜브를 틀었고,
잠들기 전엔 라디오를 켜뒀고,
혼자 있는 차 안에서도 음악 볼륨을 높였다.
효과가 없진 않았다.
그 순간만큼은, 잊혔다.
문제는 소리를 끄는 순간이었다.
어김없이 돌아왔다.
마치 내가 거길 피해 다닌다는 걸 아는 것처럼.
결국 병원 문을 열었다.
치료법이 예상 밖이었다
진료실에서 의사가 설명을 시작했을 때,
나는 당연히 이런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약을 드시면 줄어들 겁니다.”
그런데 의사가 꺼낸 말은 달랐다.
“소리를 없애는 게 아니에요.
비슷한 소리를 계속 들려드릴 겁니다.”
멈칫했다.
의사가 계속 말했다.
뇌는 반복되는 자극을 위협으로 분류하지 않는다고.
익숙해지면 그 소리를 배경으로 밀어낸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의미를 잃는 것이라고.
진료실에서 나오면서
나는 이상하게도 이명 말고 다른 것들을 생각했다.
내 안에도 사라지지 않는 소리들이 있었다
치료기에서 흘러나오는 백색소음을 들으며
가만히 생각했다.
나는 이명만 없애려 했던 게 아니었다.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
오래전 일인데 문득 올라오는 서운함,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막연한 두려움.
그것들도 나는 오랫동안 덮어두려 했다.
괜찮은 척했고,
바쁜 걸로 채웠고,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사라지지 않았다.
조용한 새벽마다, 어김없이 돌아왔다.
이명과 똑같았다.
그때부터 방법을 바꿨다
없애려 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두기로 했다.
불안이 올라오면, 올라오는 대로.
서운함이 스치면, 스치는 대로.
처음엔 무책임한 것 같았다.
해결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것 같아서.
그런데 한 달쯤 지났을 때였다.
같은 생각이 와도
전처럼 오래 붙잡히지 않았고,
같은 감정이 스쳐도
밤새 데리고 있지 않았다.
내 삶이 조용해진 게 아니었다.
내 마음이 그것을
배경으로 두기 시작한 것이었다.
평안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왔다
우리는 종종 착각한다.
모든 게 해결되면, 그때 편안해질 수 있다고.
그런데 해결된 문제 자리엔
늘 새로운 문제가 들어섰다.
평안은 소리가 멈출 때 오지 않았다.
그 소리가 나를 흔들지 못할 때 왔다.
이제 나는 여전히 그 소리와 함께 산다.
새벽이 조용할 때, 가끔 들린다.
그런데 예전처럼 창문을 확인하러 일어나지 않는다.
그냥 듣는다.
그리고 잠든다.
삶은 고요해지는 것이 아니라,
고요해질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