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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 Jul 17. 2022

최대한 아이다울 수 있도록

교실 안의 코끼리

 

 30대가 되어 “사랑은 감정보다는 결단에 가깝다.”라는 말을 믿게   연애를 통해서가 아닌 아이들을 만나서였다. 냉정하게 들릴지 몰라도 어쨌든 아이들과는 일과 공부로 만난 사이다. 난생처음 보고 누군지도 모를 아이들에게 곧바로 사랑을 말하는, 사실은 콜센터의 ‘사랑합니다, 고객님.’ 같은 맥락으로 시작된다. 만나자마자 사랑한다고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것까지 기억이 나는데,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아이들을 애틋하게 바라보며 짝사랑하고 있다. 아이들 앞에 섰다는 책임감의 무게가 결단의 스위치를 눌러 사랑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는 셈이다. 다시 말해, 짝사랑이 업무인 직업이 ‘교사.


 짝사랑이라면 제법 자신 있는 나였지만, 올해는 조금 힘들었다. 운동장 구석에서 싱그러운 잎들 사이 바삭하게 말라비틀어진 수국 다발을 찾아낸 어느 봄날, 취업 사기를 당한 심정이다 싶었다. 복도에서 마주한 저학년 어린이들은 분명히 천사 같은 얼굴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비눗방울 서너 개가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반짝거리는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면 비눗방울이 터질까 무서워, 한껏 올라간 눈썹만큼 올라간 목소리로 다정함을 짜내어 인사를 할 만큼 사랑스러운 존재들이었다.


 고학년 교실에서는 사춘기의 맛을 본 호르몬이 아이들 사이로 제멋대로 흘러 다니며 기 싸움, 반항 그리고 따돌림 같은 작은 소용돌이들을 깨나 만들었다. 가끔 저학년 교실 복도를 지날 때, 우연히 꾀꼬리같이 투명하고 아름다운 합창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정화되다 못해 경건함까지 느껴져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1학년 담임을 지원하겠다고 하자 어쩐지 다소 격하게 착하다 하여 찝찝했지만, 어느새 풍선을 불며 입학식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 줘야 하고, 어려운 말은 풀어서 설명해야 하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급식 먹다 토한 것 청소, 화장실 처리 도와주기, 머리 묶어주기, 요구르트 뚜껑 15개 연속으로 따기는 덕목이라고 생각했다. 막상 닥치고 보니, 그런 것이 문제라기보단, ‘이렇게나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사랑스럽게 바라보지 못하는 나’를 견디기 힘들었다.


 아이들은 말을 안 듣는다. 몇 번은 되뇌고, 충분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아이들은 아이다운 것이 자연스러운 이치다. 한 명을 앉히면 강아지처럼 다른 두 명이 의자에서 튀어 오른다. 하지만, 아이들이 모두 자리에 앉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의자에 앉다가 수업의 반을 보내는 것이다. 라고 낙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여러분, 앉으세요.”라고 친절하게 이야기하여 고분고분 앉는 경우는 상상 속 교실의 이야기일 뿐이다. 시간이 되면 당연하다는 듯 자리에 앉던 6학년이 잠깐 그리웠다가, 저학년만 몇십 년째 담임으로 맡은 저학년의 달인 선생님이 쓰던 방법이 떠올랐다.


 선생님은 목 아프게 한 명씩 부탁하고 호명할 필요도 없이 세글자만 이야기하면 된다. 바로 “엉덩이”라는 단어이다. 교사가 “엉덩이”를 말하면 아이들은 일제히 “철썩”을 외친다. 이어 교사가 3, 2, 1을 모두 세기 전 의자에 엉덩이를 철~썩 붙이면 된다. 노동요의 메기고 받는 형식을 닮아서인지 협동이 잘되어 주변 친구들을 도와주기까지 한다. 아이들은 잔소리 하나 없이 기분 좋게 공부할 준비를 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단어를 공약하는 수법인데, 많이들 알다시피 아이들은 코딱지, 방구, 엉덩이 같은 단어 한정 집중력이 남다르다는 것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제 아이들을 의자에 앉혔으니, 공부를 시작하면 된다.


 “여러분 국어책 꺼내세요. 몇 쪽이지요?” 물으면 반에 대화가 통한다 싶은 학생 두 명 정도만 사랑스럽게 대답한다. “14쪽이요?” 오답이다. 그것도 기특하다. 나머지는 책을 50키로 아령처럼 서랍에서 힘겹게 꺼내기도 하고, 사물함으로 책을 찾으러 기나긴 여정을 떠나기도 하고, 여정을 떠나 돌아오는 길에 자기 자리가 아닌 친구 자리에 도착해 주말에 포켓몬 빵 먹었던 이야기로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이때, 아이들에게 관심을 받지 못할거면 야유라도 받자는 생각이 들었다. “얘들아, 선생님은 좋아하고 아이들은 싫어하는 피자가 뭐게요~?”


 아이들이 각종 피자 메뉴를 읊으며 제법 시선이 집중되면, 답을 공개한다. “책 피자.” 아이들이 잔뜩 즐거움을 머금은 눈빛으로 야유를 보낸다. “책 피자 배달해주세요.” 아이들이 못 이기는 척 책을 펴기 시작한다. 그 후부터는 “똑똑, 치킨 시키셨나요?” “아니요, 피자 시켰는데요? 얘들아 무슨 피자 시켰죠?” 이런 식으로 놀이처럼 시작한다. 아이들이 책을 한 손에 피자를 배달하는 것처럼 들고 근엄한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페퍼로니 피자 아니고 책 피자입니다.” 하며 빙글 돌며 자리로 들어온다. 이런 수업 전 워밍업이 좋은 것이, 특히 공부에 관심과 재능이 없는 친구들이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해 창의적으로 아이들과 교사를 웃겨준다는 것이다. 웃으며 시작한 수업은, 내용이 재미없어도 각자 주인공이 되어보고 느낀 효능감으로 수업에 참여자고자 하는 의욕이 생긴다. 1학년이라도 말이다.


 그 후로 몇 가지 유형의 수업 준비 발문들을 개발해 두고 그때마다 바꾸어서 사용하고 있다. 교실에서 함께하며 적지 않은 시공간을 공유하고 웃음 속에서 배움을 함께할 수 있도록 도전하는 중이다. 아이들은 아이답다는 것을 교사가 인정하고 아이들에게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들도 그것을 안다. 남모르게 하던 짝사랑을 어느 순간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들켰다. 공개적인 짝사랑을 하는 선생님에게 응원이라도 하듯이 하교 인사가 바뀌었다.


선생님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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