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가다 뛰는 도련님 Oct 03. 2022

#7 이건 정의가 아니라 복수다

세상 구하겠다는 내 꿈은 몇 점인가

일 시작한 지 2주 차가 되니 드디어 나를 단톡방에 초대한다. 보통의 회사라면 일 시작과 동시에 단톡방에 초대하는 게 일반적이겠지만 이곳은 다르다. 그만두는 사람이 하도 많으니 섣불리 단톡방에 초대하지 않는다. 단톡방에 입성하기 위해서는 입사 말고 다른 어떤 자격이 필요한 셈이다. 그 자격이라는 게 무엇인지는 부장의 말을 들어보면 알 수 있다. 



"그동안 지켜봤는데 열심히 하는 거 같으니 더 열심히 하라는 의미로 초대해 주는 거야"



초대받은 단톡방은 총 두 개다. 첫 번째 단톡방은 같은 팀인 부장, 과장, 8개월이 있는 KBS 단톡방이다. 이 카톡방에서는 매주 방송 녹화 스케줄 등을 볼 수 있다. 이전까지는 8개월 차 직원에게 그날의 스케줄을 개인 톡으로 받았다면 이제부터는 단톡방에서 내가 직접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덕분에 몇 시에 출근하고 퇴근할지 대략적으로 파악이 가능하다. 그전까지는 당장 내일 몇 시 출근이고 몇 시 퇴근인지 조차 몰랐다.



어차피 매일 새벽 퇴근이라 별 관심 없긴 했다.


 

두 번째 단톡방은 회사 공식 단톡방이다. 다른 방송국 팀은 물론 회사 대표까지 있다는 방이기 때문에 특히나 말조심하라며 신신당부이다. 아무래도 벌써부터 찍힌 거 같다. 출퇴근 보고 외에는 아예 글을 쓰지 말라고 한다. 출근하면 '출근했습니다'라고 쓰고 퇴근할 때는 '퇴근하겠습니다'. 만 쓰라고 한다. 하지만 부장이 미쳐 신경 쓰지 못한 부분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단톡방에 저장되어 있는 회사의 각종 자료였다.



내가 주의 깊게 본 것은 회사의 사업자 등록증이었다.



그전까지는 회사의 이름조차 몰랐다. 방송국 입장 시 회사명을 적어야 하는 부분이 있었지만 언제나 회사 하청업체 이름을 적었기에 진짜 회사의 이름을 몰랐다. 하지만 이제는 진짜 회사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또한, 내가 다니는 회사가 '방송업'이 아닌 '건설업'으로 신고가 되어 있다 걸 알게 되었다. 이게 중요한 게 회사가  장시간 노동을 시킬 수 있는 근거로 내세운 논리가 방송업은 무제한 노동이 합법이라는 법 때문이다. 



실제로 방송업은 특례업종으로 구분되어 무제한 노동이 합법이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돌아가는 시스템은 간단하다. 사회의 어두운 면을 언론, 방송국이 조명하여 여론을 모으면 그 여론을 먹고사는 입법부, 정치인 혹은 국회의원이라 불리는 자들이 법안을 발의한다. 그렇게 발의된 법안을 정부가 행정을 하고, 그 결과를 사법부가 심판한다. 이게 이 나라의 민주주의이다. 그런데 방송국은 예외인것이다. 



아무도 보도하지 않는다. 



뉴스에서는 위험의 외주화로 인한 산업재해, 각종 특수 업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의 처우 등을 보도하지만 정작 방송국 내부 노동자 문제는 결코 보도하지 않는다. 여론을 모아야 할 방송국이 정작 자신들의 치부를 보도하지 않으니 여론이 모이지 않는다. 방송국 노동 환경에 대해 대중이 인식하는 범위는 방송작가, PD 등이 전부이다.



그나마 작가나 PD들의 인터뷰의 결론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성공 스토리이다.



내가 일했던 2018년도 KBS에서는 전 정권의 언론 탄압을 비판하는 시위를 방송국 로비에서 자주 볼 수 있었다. 어느 청소 노동자가 깨끗하게 닦아 놨을 대리석 바닥에 보기 좋게 줄 맞춰 앉은 후 '언론자유'와 같은 정의 외쳐댔다. 나는 그런 그들을 지켜보며 지하로 내려갔고 그곳에서 무제한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그런 내게 그들이 말하는 정의는 위선이다.



분노가 사그라지질 않는다.



나는 분노가 많다. 내가 배운 세상은 정의로 가득 차야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군대가 그러했다. 뉴스를 보다 보면 군에서 다치고 버려진 자들의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어릴 때에는 그들을 보면 어쩌다 있는 운 나쁜 경우라 생각했지만 내가 그 이야기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군의관의 오진으로 나는 장이 썩어버릴때까지 참아야했다. 소송결과도 참패였다. 군복무 시절, 관물함에 태극기를 걸어놨던 내가 너무 한심했다.



그렇기에 이 글은 소설이다.



괜히 허위사실 유포랍시고 소송 걸려 다시는 판사 놈 만나고 싶지 않다. 나는 표현의 자유 뒤에 숨을 것이다. 이거다 거짓말이다. 나는 인문학이라는 수단으로 우아하게 복수 할것이다. 내 모든것을 걸었다. 꼭 성공하여 나를 꾀병 취급했던 당직사관, 오진했던 군의관, 날 심판했던 판사 모두에게 복수 할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거 다 거짓말이다. 

 


이건 정의가 아니라 복수이다.


  

작가의 이전글 #5 집에 뜨거운 물 나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