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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가다 뛰는 도련님 Oct 14. 2022

#10  나는 노예가 아니다

세상 구하겠다는 내 꿈은 몇 점인가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왔다. 절뚝이던 다리도 일주일 지나니 다 나았다. 겨울 내내 이어졌던 PD들의 파업도 하나 둘 종료되며 무대 제작 건수도 그만큼 더 많아졌다. 문뜩 초창기 부장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지금은 일이 적은 거라며 앞으로 일이 더 많아질 거라 했는데 진짜 많아졌다. 많아진 일을 해결하기 위해 신입 직원이 입사했다. 새로 들어온 신입은 8개월의 친형이다. 8개월 이놈은 설날 끝나고 떡값 안 줬다고 무단결근까지 하며 그만두겠다고 했던 놈인데 이제는 자기 친형까지 데려왔다.



그러고 보니 부장과 실장도 형제지간이다.



방송국 일은 유독 가족 단위가 많다고 들었다. 힘든 일을 대신해 줄 누군가가 필요한데 아무도 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일을 할 노동력을 가족으로 채운다. 가족으로 머리수를 채운다는 게 씁쓸하지만 이 일이 나쁘지만은 않다. 이 일은 공무원보다도 더한 철밥통이기 때문이다. 그냥 버티기만 하면 먹고사는 걱정은 전혀 안 해도 된다. 오히려 일 그만둔다 하면 회사는 더 좋은 대우를 약속하며 붙잡는다. 



실제로 8개월이 그만두겠다며 3일을 무단결근 한 적이 있는데 대리로 승진했다.



날이 풀리며 지방출장도 시작되었다. 열린음악회 무대 제작을 위해 울산과 창원을 가야 한다. 그런데 시작부터 일이 꼬인다. 몽골 외국인 노동자들이 밀린 돈 안 주면 안 가겠다고 버텼기 때문이다. 그들이 없으면 일이 안된다. 그들만큼 숙련된 노동력을 지방에서 구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과장이 연신 부장에게 어서 돈 입금하라고 전화를 돌린다. 



일 했으면 돈 주는 게 맞는 건데 이 당연한 거 때문에 출발이 지연된다. 



지방출장이라 하니 뭔가 상당히 고달플 거라 생각했지만 막상 일을 해보니 서울에 남아있는 것 보다도 더 좋았다. 서울에 남으면 그날 예정된 무대 전부를 만들어야 하지만 지방 출장은 하나의 무대만 만들면 되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방출장을 가게 되면 야외 공연무대이기 때문에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일할 수 있다. 방송국에 자욱한 먼지 대신 말이다. 허리와 무릎에 무리가 가는 천정작업도 안 해도 된다. 안 그래도 무릎이 한계에 다 달았는데 역시 난 운이 좋다. 무엇보다 방송국 외벽에 가려진 노동환경이 그대로 밖에 노출되기 때문에 야간작업은 자제한다. 



덕분에 저녁에 쉴 수가 있다. 


 

물론, 나쁜 점도 있다. 과장과 함께 쓰는 숙소는 담배냄새가 끊이지 않는다. 술 먹고 들어와서는 자고 있는 날 깨우기 일쑤였다. 회식에 참석도 해야 한다. 이 회식의 주체자인 무대감독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서울서 일해야 하는 부장과 실장이 만사 재치고 울산까지 운전해 왔다. 그런데 여기서 또 대사건이 발생했다. 무대감독이 회식을 시작하면서 자기는 회식 억지로 참석하는 거 싫어한다고 싫은 사람은 가도 좋다는 말에 나의 몸이 반응해 버렸다. 정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숙소로 들어갔다. 



난 들어가도 좋다니 들어갔을 뿐이다.



3일에 거친 무대가 완성되고 공연도 잘 끝났다. 이제 다시 만들었던 무대 해체 작업만 하면 된다. 태풍의 영향 때문에 보슬비가 내려 바닥이 미끄럽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밤샘 철거 작업이 진행된다. 조명팀이 철수하면서 현장은 암흑으로 뒤덮인다. 조명팀이 등 한 개는 남겨주지만 그걸로는 역부족이다. 멀찌감치 보이는 도로변 가로수 등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모든 게 가려진다.



100일의 날이 찾아왔다.



마지막 날 무대 제작 장소는 역사적 이게도 경복궁이었다. 이 나라의 역사의 중심지에서 마지막을 장식한다고 생각하니 조상님까지 나의 100일을 축하하는 기분이다. 드디어 퇴사를 통보하는 날이다. 과장과 점심을 먹으며 조심스럽게 그만두겠다고 말을 뗀다. 과장은 '왜'라는 질문도 없이 부장에게 전화하라고만 하고는 끝이 났다. 씁쓸함이 묻어 나오는 마지막이었다. 조용히 담배를 물 뿐이었다.


곧장 부장에게 전화를 건다. 나의 첫마디는 "전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였다. 너무나도 단호한 나의 말에 말문이 막힌 부장은 일단 얼굴 보고 말하자며 전화를 끊었다. 이내 광화문에 도착한 그는 설득은 포기했는지 다음 사람 구할 때까지만 일해 달라는 등, 이렇게 곧장 일을 그만두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식으로 대화를 풀어갔다.



예의? 어림도 없다. 나는 하늘이 두쪽이 나도 바로 그만둔다.



나는 부장이 가장 싫어할 만한 무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보며 나는 예의를 지킬 필요가 없다 말했다. 나는 근로계약서를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근로계약서란 서로 간의 약속이고 최소한의 예의인 건데 회사는 그것을 거절했다. 내가 수차례 요구했음에도 자신들의 이익을 말하며 말이다. 그러니 그 대가를 치를 뿐이다.



근로계약서라는 건 서로 간의 존중이라는 거 명심하기를 바란다.



일이 끝나고 몽골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설렁탕을 사주었다. 한 번쯤은 회사 돈이 아닌 내 돈으로 식사 대접을 해주고 싶었다. 그동안 나를 대신하여 위험한 일을 해준 그들에 대한 나의 보답? 속죄? 뭐든 상관없다. 설렁탕 한 그릇으로 내 마음이 편해질 수 있다며 면 얼마든지 사준다. 그런 내 마음도 모르고 몽골 외국인 노동자들은 설렁탕 다 먹자마자 간단한 인사 후 사라졌다. 안녕.



홀로 남은 광화문 거리에서 지난 100일을 돌아본다.



처음 해본 노가다, 사람이 이렇게 잔인해질 수 있다는 현실과 그런 현실이 사람을 이토록 잔인하게 만드는 인생 최악이자 최고의 추억이다. 고달픈 오늘, 나아질 거 같지 않은 내일, 이것이 나의 운명이라는 세상의 질서, 아무도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 함께 했던 이들에게 한 마디 한다.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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