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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가다 뛰는 도련님 Oct 18. 2022

#12 바리스타로의 두 번째 모험

세상 구하겠다는 내 꿈은 몇 점인가

방송국에서의 100일은  하루하루가 고통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매일매일 그만두고 싶었다. 100일이라는 시간이 왜 이리 더디게만 느껴지는지 하루하루가 고통이었다. 얼마나 쉴 틈 없이 사람을 굴렸는지 토하자면 사촌동생 결혼식 가야한다고 한 달 전부터 말했더니 결혼식 당일 식만 참석하고 오라고 4시간 휴가를 줄 정도이다. 그런데 일 그만두고 먹고 자고 싸기만 했더니 어느새 두 달이 훌쩍 지나버렸다.



이제 슬슬 두 번째 노가다를 시작해야만 했다.



두 번째 노가다는 어떤 걸 해야 할까... 고민이 깊어졌다. 처음 노가다를 시작할 때만 해도 노가다 그까짓 것 별거 아니라며 호기로웠던 나의 자만심은 현실 직시 후 태도를 달리했다. 사람 할 짓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한 번이라도 더 했다가는 온몸이 가루가 될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세상 구하겠다는 나의 일생일대의 모험 이야기가 이대로 끝이 날 수는 없다.



그때 생각난 게 바리스타라는 직업이었다.



KBS방송국 정문 앞에는 별다방 커피숍이 있다. 한창 내가 일 할 때 오픈한 매장이다. 그 매장 앞을 매일 지나다니는데 너무 부러웠다. 나는 한 겨울에 손이 얼어붙으며 철근을 지고 날라야 하는데 커피숍 직원들은 너무나도 따뜻하고 밝아보였다. 한 번쯤 그런 곳에서 일을 하고 싶었다. 게다가 쉬는 시간마다 커피 심부름을 해야 하는 방송국과 달리 그곳에서는 얼마든지 커피 향 나는 진짜 커피도 마실 수 있다. 



2번째 직업은 바리스타다.



개인적으로도 바리스타라는 직업에 호감이 있기도 했다. 은퇴 후 시골 조용한 곳에 집과 카페를 짓고 살겠다는 로망을 품고 있는 내게 바리스타란 직업은 로망을 위한 예행연습이다. 카페에서 일을 해보면 분명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취업포털사이트에 올라온 서울시내 카페에는 모조리 지원했다. 한 군데 정도는 되겠지라는 마음가짐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한 달이 지나도록 단 한 곳에서도 면접 제의가 오지 않았다. 이유는 이미 알고 있다.



나의 이력서에는 사진이 첨부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예전에만 하더라도 '용모단정'이라는 단어를 채용 시장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뭐, 사장님들 마음이야 이해가 된다. 멋지고 예쁜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은 건 모두가 바라는 일이니 그걸 탓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런 세상의 이치를 무시한 채 사람을 사람으로 봐주는 따뜻한 사장님과 함께 하고 싶었다. 마음씨 좋은 사장님에게 나라는 선물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분명 힘들어하는 약소기업 카페 사장님에게 나라는 기회를 줬지만 자기네가 싫다는데 어쩌겠나, 그때부터 대형 브랜드 커피숍에 지원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생각난 회사는 바로 '별다방' 커피숍이었다. 글로벌 대기업이며 부동의 업계 1위로 절대 망할 거 같지 않은 회사이다. 훗날 세상을 구해내면 별다방 회장님이 커피숍 하나 차려줄지도 모를 일이다.



당장 이력서 집어 넣는다.



별다방은 지원부터 까다로웠다. 쓰잘머리 없는 인적성 검사를 해야한다. 인성은 단연 최강이라 문제당 1초도 고민 할 필요없이 답한다.  인적성 검사가 끝이나니 자기소개서를 쓰라한다. 이것 역시 1초도 고민할 필요가 없다. 나는 작가라 말하는 자이다. 아주 패기 있게 써주도록 한다. 나는 세상 구하겠다는 미친놈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자기소개서가 고작 300자이다. 나를 표현하기에는 300자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건 뭐 좀 쓰다 보면 300자가 훌쩍 넘는다. 




면접 연락이 왔다.



인적성 검사니 자기소개니 쓴 보람이 있다. 면접날 시간 맞춰 손님인 척 카페에 들어가 매장을 둘러봤다. 앞으로 내가 일하게 될 카페가 될지도 모를 곳이다. 손님의 시선으로 이곳 점포의 장점, 단점을 하나하나 둘러본다. 이미 마음은 합격을 넘어 점장이다. 이런 걸 보고 주인의식이라 해도되나? 커피 한잔 주문한다. 오늘 내 이름은 '오늘 면접 보러 온 닝겐'이다.


아주 자연스럽게 면접이 시작된다.


면접관의 첫 번째 질문이다.


"커피 좋아하세요?"


나는 답한다.


"아뇨,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분명 다들 좋아한다고 답을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언제나 상대의 허를 찌른다. 두 번째 질문이 이어진다.


"어떤 커피 좋아하세요?"


분명 커피 안 좋아한다고 첫 번째 질문에 답을 했는데 어떤 커피 좋아하냐고 묻고 있다. 뭐지? 이게 말로만 들었던 압박 면접인가? 첫 번째 질문에서 무조건 커피 좋아한다고 답했어야 했나? 흔들리는 나의 동공 속에 면접 전에 받았던 아이스 캐러멜 카페 라때가 보인다.


"아이스 캐러멜 바닐라 라테요!"


세 번째 질문이 온다.


"저희 별다방 커피 많이 드셔 보셨나요?"


나는 답한다.


"아뇨, 거의 안 옵니다."


사실이다. 나는 별다방은커녕 카페 자체를 거의 이용 안 한다. 뭐 하러 그 비싼 커피를 사 먹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한잔에 5천 원? 이게 말이 되는 가격인가? 편의점만 가더라도 천 원이면 먹을 수 있는 게 커피이다.


네 번째이자, 마지막 질문이 날아온다.


"전에 뭐 하셨어요?"


"노가다요!"


그날 저녁 불합격 문자를 받았다. 


그 후 다른 대형 브랜드에도 이력서를 넣어봤지만 전부 불합격했다. 어쩔 수 없이 채용사이트에 적어둔 이력서에 사진을 첨부하고 다시금 무차별적으로 지원을 했다. 그러자 4시간도 안되어 강남의 어느 카페에서 면접 연락이 왔다. 연락이 온 카페는 중소 브랜드의 강남본점이었다. 이번에도 면접 전에 카페를 둘러봤다. 테이블 수가 30개가 훌쩍 넘는 제법 규모가 큰 카페로 야외 테라스까지 있는 낭만 가득한 곳이다. 



그 중 가장 마음에 든 건 점장님의 아우라였다.



면접을 위해 카페 점장이란 분이 등장했는데 그 외적인 모습이 평소 생각하면 바리스타라는 직업과 너무나도 흡사했다. 섹시한 콧수염을 보고 있자니 바리스타 대회에서 각종 상을 휩쓴 분이 분명하다. 그러니 중소 브랜드 카페의 본점 점장직을 맡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요리왕 비룡이 할 법한 기술로 커피를 볶고 지지고 추출할 게 분명했다. 



면접 내용은 별거 없었다. 



급여, 휴일, 근무시간 등에 대한 알림만 있을 뿐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관한 개인적인 질문은 없다. 나 역시 카페가 제시하는 근무조건에 아무런 토를 달지 않았다. 카페가 어떤 조건을 제시해도 방송국 노가다보다는 2배, 3배는 좋을게 뻔하기 때문이다. 주 100시간 노가다가 주 50시간으로 절반으로 줄어든다. 급여는 최저시급이지만 방송국 노가다는 최저시급의 반의반도 못 받았기 때문에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은 없다. 휴일의 경우도 방송국은 한 달에 3일 쉬는데 반해 이곳은 6일이나 쉰다. 최고의 조건이다. 



그렇게 2018년 9월 1일, 카페 바리스타로의 두 번째 모험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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