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물어볼 수 없었다.

어쩌면 친절의 불필요

by 뿡빵삥뽕


카페에 앉아 차 한잔 마시면서 일어나야 할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이 있는 날은 있는 날대로, 없는 날은 없는 날대로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며 한가로워지는 건 참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번화가 근처이기도 여중, 여고 근처이기도 한 곳에 자리 잡은 이 카페에는 자주 찾아오는데 내 자리 앞으로 한 여학생이 지나간다. 그리고 그 학생이 잊히기 전에 다시 한번 지나간다.


무슨 일인가 괜한 호기심에 그 아이의 뒷모습에 시선이 따라가는데 다시 내 쪽으로 와 한번 주위를 훑어본다.



내가 도움이 될까 의심도 됐지만 도와줄 일이 있는지 물어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직도 길거리에서 이상한 종교인들의 스탑사인(?)도 받으니 크게 흉측한 얼굴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찰나에 변해버린 세상이 내 발목을 잡는 것 같았다.



'요즘 세상이 얼마나 흉측한데 아무 하고나 말을 섞을까.'

'그 아이를 뭐라고 부를 건데? '얘야, 저기, 이봐 학생' 뭐라고 부르더라도 쟤는 널 이상한 사람으로 볼걸.'

'카페에서 자기를 부르는 낯선 남자를 요즘 애들이 뭐라고 부를 거라고 생각해?'



내 생각이 도가 지나쳤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춘기 여학생이 표정으로 드러낼 거부감을 생각하니 그냥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오지랖일지언정 친절을 베푸려는 생각에 걸림돌이 너무 많이 생겼다.





내 친절한 마음을 내가 거절한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급한 대로 심폐소생술을 하다가 잘못되면 잡혀가는 세상이 됐고, 그 착한 사마리아인들에 대한 법적 공방이 어떻게 마무리됐는지도 모르겠다. 친절을 베풀어 좋은 사람이 되느니 발생할지도 모르는 불편을 미연에 방지하는 게 더 나은 세상에 되었다.





이전에도 이런 일은 있었다. 정류장에서 누가 봐도 헤매고 있는 학생에게 주변 많은 사람 누구도 이유를 묻지 않았다. 나도 그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마 눈치만 보고 시선을 피한 몇몇은 혹시라도 학생의 낯에 드리워질 '무슨 상관이야'라는 표정이 두려워서 그런 게 아니었을까. 도와주는 게 낯선 일이 되어버렸다.




정류장에서 천 원, 2천 원을 구걸하던 사람들이 있던 시절이 잠깐 있었다. 나도 몇천 원씩 몇 번 내어준 적이 있었고 어떤 할아버지는 대낮에 내게 거제도를 내려가야 하니 2만 원을 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천 원, 2천 원을 거절해서 뭔가 나쁜 사람이 되기 보다는 그 돈을 내어주고 착한 사람이 된 기분을 즐겼던 것을 숨기진 않겠다. 그리고 2만 원을 요구한 할아버지에겐 속는 셈 치고 돈을 줬다.


'드렸다'가 아닌 '줬다'가 내 기분 그대로일 것이고, '줬다'와 '속는 셈'이 키워드다.









어쩌면 친절의 불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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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면 난 요즘 노란색 좌석이 지나치게 많아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버스에 오르면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좌석까지 노란 의자다.


'인구 비율이 이렇게 변했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간혹 사람이 많이 없는 정류장에서 타면 어떤 노인분들은 초록색 의자에 앉는다.

그리고 어쩌다 노란색 의자만 비어있는 때 젊은 사람들이 타서는 서서 간다.


사회가 정해버린 친절이 일정 수준이 되어버리니 사람들이 자신의 친절을 베풀 기회도 없지만 마음도 없어지게 된다. 가끔은 친절의 역전 현상이 벌어진다. 비어있는 노약자석 앞에 서서가는 비노약자가 발생한다.




과도한 노약자석은 젊은이들에게 노약자 양보를 불필요하게 느끼도록 만든다.

노약자에 대한 친절이 없어져서 노약자석이 많아졌다고 항변하면 또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이상하게도

친절이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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