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있고 없고의 문제
밥을 얻어먹어도 주머니에 밥값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
이것과 관련해서는 가족은 밥상공동체이니 제외해야 한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밥을 얻어먹을 때는 마음 한 구석이 무겁다.
내 주머니에 단돈 만 원짜리라도 없으면 더 무거워진다.
고마운 마음이 들긴 하지만 부담스럽다.
식사 후에 차라도 한잔 대접하며 나름의 빚 갚을 여유가 주머니에 있어야 얻어먹는 게 아니게 된다.
요즘에는 카드나 핸드폰 결제가 전보다 많이 이뤄지니 그래, 통장 잔고가 괜찮아야 한다.
카드를 추가로 늘리기 싫어 주거래 은행이 아님에도 기존에 갖고 있던 후불 교통카드를 계속 쓰고 있다.
스마트뱅킹이나 인터넷뱅킹은 요즘 보안이 적절하지 못해 아주 조금 불편하더라도 자동이체 건을 제외한 입출금은 대체로 직접 나선다. 아둔한 방법이라 할지는 몰라도 자동이체로 굴러가는 세상이라 입출금 할 일이 그다지 많지 않다. 전보다 ATM기가 많이 없어지긴 했어도 하루에 두세 곳 지나치는 게 어렵지도 않다.
그래서... 그 주거래 은행이 아닌 곳의 후불 교통카드에 잔고를 채우고 나오는 길에 빈 주머니가 촉발하는 자존감 저하 현상이 떠올랐다.
주머니 속 가용자금은 닻과 같다.
누군가 밥을 사고 차를 사더라도 내가 바로 그 자리에서 되갚지 않을 건데도 주머니에 가용 자금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꽤 크다. 마치 바람에도 배가 흔들리지 않게 해주는 '닻'과 같은 역할을 해준다. 바람과 일정 비례하는 닻을 내리면 고마움에 숙여지는 각도가 줄어든다.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의 밥을 사더라도 주절스런 고마움을 바라지는 않은데 반대 상황이 되면 사람 마음이 괜한 곳에도 신경을 쓰게 된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밥 한 끼에 한껏 의기양양한 캐릭터라도 보면 그런 위축은 보다 더 하다.
자기 위안
참 두서없이 쓰고 있지마는...
주머니 속 얼마, 카드와 통장 잔고 속 얼마는 돈에 관한 경박한 자존심이라기보다는,
자본주의 속 돈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깊이 내린 닻과 같은 위안의 안전장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