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들의 세상

벌레로 비하하는 세상

by 뿡빵삥뽕



벌레 이야기Ⅰ


1998년도 크리스마스를 겨냥한 픽사의 '벅스 라이프'라는 귀여운 영화가 있었다.


지금의 기술로도 만들기 어려울 3D 애니메이션 영화였는데, 나이가 한참 더 들어 봤다가 푹 빠져들었더랬다. 귀여운 곤충들의 마이크로 세계, 그리고 랜디 뉴먼의 아기자기한 음악은 지금 다시 봐도 훌륭하다.


약육강식과 공동체, 협의 가치를 '곤충'들의 본질에 대입해서 각자가 갖는 가치를 고민해 볼 수 있게 하는데 이 영화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주제가 : The Time of Your Life

참 좋은 노래.




벌레 이야기Ⅱ


개신교 찬송가 143장 '웬 말인가 날 위하여' 와 151장 '만왕의 왕 내 주께서'를 보면 이런 가사가 나온다.


'… 벌레 같은 날 위해 …'


개신교 신자인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가사, 찬송이다. 벌레가 하찮다면 벌레를 위해 하는 희생도 하찮아진다. 뭐... '죄인'과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인간 본질에 대한 아이러니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 '벌레'라는 단어는 '신' 앞에 선 인간의 겸손과 낮아짐을 표현한 것인데, 사실 '겸손' 보다는 '자기 비하'의 느낌이 강하다. '나 같은 죄인'이라는 찬송 정도가 보여주는 저자세가 사실 더 마음을 움직인다.





벌레 이야기Ⅲ


일베충, 오유충, 삼엽충, 앱등이, 베댓충, 시위충, 무도충에서 맘충이까지.


그동안 알고 있는 벌레 비하 단어들과 잠시 찾아본 귀에 잘 익지 않은 단어들도 몇 가지 추려봤다.

더 찾아본다면 아마도 훨씬 많지 않을까?



다른 사람들을 '비하'해서 즐거움, 쾌락을 얻는 행위는 사실 유년기에서 사춘기에 이르는 시절 주로 하던 행동이다. 일본어로 이지메 - 우리 말로 왕따를 자행해서 얻는 비정상적 즐거움, 안도감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곳에 정당한 비판, 비난 보다는 실제 현상보다 과격하고 비약적인 비난과 폭력만이 존재했다.








물론 앞서 적은 '아무개 충'이라는 표현을 불러온 '사건'들에 대한 비난의 시선에는 동조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지나친 비하와 지나친 단어를 사용한다는 데에는 문제의식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개들의 세상



개 좋아, 개 귀여워



'개'라는 단어도 '벌레, 충'이라는 단어와 함께 우리 사회에서 '좋지 않은 어떤 것을 비하할 때' 사용되던 단어였다. 그러나 지금 '개'라는 단어에는 '매우, 아주, 많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게 됐다. 물론 비속어적인 성격에서 말이다.



'개'라는 단언에 아무리 다른 의미가 추가되더라도 '개 같다'라는 의미가 좋아질 수는 없다.





언어는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함께 변하지만, 변질하기도 저급해지기도 한다.



'충'이라는 단어가 분명히 사회상을 반영하지만,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은 몰상식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태도를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지극히 비하함으로 '자신을 정당화'시키는 사춘기적 카오스를 반영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표현을 늘 뒤에서 남발한다.

지극히 쉬운 한글 맞춤법도 틀리면서 말이다.



뜬금없는 맞춤법 이야기를 꺼내놓고 보니 '선비충'이라는 말이 갑자기 떠오른다.

혹여 '선비충'이라는 말을 듣게 되더라도 우리는 벌레가 되어서는 안된다.



도덕을 강조하고 옳은 말을 하는 사람에게까지 지적질이라며 벌레로 비하하는 세상이라면 이제는 뒤돌아 보고 잘못을 고쳐볼 때가 된 것이 아닐까.











훈민정음 訓民正音


세종대왕 당시 반포되었던 한글의 원래 이름은《훈민정음》이다.


국민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의미다.


바를 正자를 기억하자.


세종대왕님과 학자들은 그따위로 쓰라고 한글을 만들지 않았다.


사람은 사람으로 부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