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카뮈 페스트 민음사 고전
카뮈의 <페스트>를 읽었다.
오랑시에 페스트(흑사병)가 돌자 도시는 폐쇄된다. 의사 리유(리외)를 중심으로 친구, 서기, 판사, 신부 등의 사람들이 페스트에 몸과 마음이 어떻게 잠식되가는가를 매우 건조하게 보여준다.
소설 속에 존재하는 인물이지만 르포르타주처럼 극단적인 관찰자를 자처하는 서술자를 따라 중반즈음에 이르면,
페스트는 질병이지만 폐쇄된 도시를 음과 양으로 지배한다는 점에서 이념이나 종교와도 같은 인상을 준다.
p138
그(리유)는 자신도 모르게 페스트가 내는 신비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p224
페스트라고 하는 저 꼭대기 지점에서 내려다보면 형무소장에서부터 말단 죄수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은 유죄 선고를 받은 처지였으니
p242
페스트가 가치 판단을 말소해 버린 것이다.
p401
즉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그 균은 (중략) 꾸준히 살아남아 있다가 아마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마르크스는 종교가 민중의 아편이라 했으니, 역으로 질병이 이념의 형상을 취한다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페스트가 신의 징벌이며 순순히 받아 들여야 한다고 소리 높히는 신부의 설교는 폐쇄된 세상에서 종교마저 페스트의 지배를 받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그 누구도 페스트에 천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극단적인 전염병 속에서 누가 어떻게 살아남느냐는 중요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페스트를 통과하면서 어떤 변화를 겪는가, 어떻게 현실을 마주하는가가 더욱 중요하게 부각된다.
결과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용감하게 페스트를 직시한 인물들 중에선 그나마의 해피엔딩을 맞은 이도 있으나 전염되어 죽기도, 소중한 사람을 잃은 이도 있다.
어떤 결과도 이미 존재하는 재앙, 혹은 현상, 현실을 앞에 두고 신의 징벌이니 달게 받으라는 신부가 될 것인가, 결국 도망치지 않은 기자 랑베르가 될 것인가, 끝까지 돌본 의사 리유가 될 것인가... 의사의 어머니가 되어 페스트에 맞서 싸운 아들 친구의 병상을 지켜줄 것인가.
(질병일수도 이념이나 현상으로 다가온)페스트가 다시 올 것이라고 짐작한 소설의 마지막은 그렇게 질문처럼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