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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이 Dec 25. 2017

행복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자유

422 불행은 불평이 아니라 의외의 일상

나는 대체로 행복하지 않은 시간을 살아왔다.


어릴 때는 '그땐 그랬지'라는 변명을 정당화하는 어른들의 억압도 겪었고, 내가 하지 않은 잘못 임에도 불구하고 수차례 누나와의 연대책임을 강요 받기도 했다.

중2 개학식 날 등교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는데도 병원에서 당장 큰 문제 없다는 말에 병원을 나서서 부리나케 학교로 보내지기도 했다. 타고나길 예민한 성격에서 절반쯤은 기인했을 '틱'을 부모님은 때려서 고치려는 무모함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그건 내게 걱정과 고민을 투자하기 불편해했기 때문이다.


옛날 이야기에 너무 많은 의미와 스트레스를 부여하는 것이라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인생의 기초공사는 중요합니다) 사춘기 이후 시작된 불면증과 사방에서 공격을 불러오는 '틱'과 낮잠을 자지 못하는 특수한 성격을 견뎌온 건 '나'일 뿐 가족을 포함한 타인들이 아니었다.



경제적으로 특별히 어려움을 겪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안정적인 중산층도 아니었고, 내게 떡 하나라도 더 던져지면 그걸 차별이라고 생각하는 한살 차이 누이가 매 순간 끈덕지게 날 기분좋게 할 리도 없었다.
학업에의 비용은 누이가 배는 더 들었지만 안타깝게도 눈꼽만큼이라도 지식에의 세례는 내가 두어방울이라도 더 받았으니 필요한 때 손해를 본건 나지 누구누구는 아니었다.



남자에게 주어진 예민한 성격은 지극히 평범하게 살고 싶어하는 부모님이 기대하는 모범적인 자녀상은 아니었다. 게다가 특별히 예민하여 억압된 스트레스를 얼굴로 틱틱 풍기는 모습은 더욱이. SBS에서 틱에 대해 기획 프로그램을 방영했을 때도 부모님은 '다들 몰라서, 먹고 살기 바빠서 그랬다'로 적당히 외면하려 했으나 사실 그 당시 우리 집은 전혀 먹고 살기 어렵지 않았으니 외식과 주식과 첫째에 대한 관심에서 내가 진거지.

그때 내 삶 전반에 대한 부모님의 온갖 망상과 훈수를 외면하기로 작정하지 못한 내가 멍청했다.





언젠가 친구들과 어린 시절의 아쉬움과 아픔을
서로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아무개는 '너 정도면 행복한거야'라고 일관했다.

건물 한채를 미리 상속받은 남편을 만난 아무개가 과거와 현재를 싸잡아 그런 얘기를 하면 코미디다.



행복은 상대적이다.
그러하기에 너 '정도면'이라는 자신의 등급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그렇지만 쉽게 행복을 정해버리고
불행을 이야기하는 것은 사치라고 지적한다.

너 정도의 삶에도 불구하고
불행을 이야기하는 것은 쿨하지 못하며
불행을 선언하는 것은 비겁하다고 결정한다

그렇게 불행의 슬픔을 인정받지 못하는
또 다른 불행을 겪는다

불행은 지문과도 같아서 생긴 게 제각각이고
자세하게 살펴보지 않으면 이해하기 곤란한 것이다.


가난한 사람이 가난을 인정받지 못해
제도권 복지에서 소외되어 자살하는 경우가 빈번한데
불행이라는 정신적 가난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도
이와 비슷하게 보이는건 나뿐인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그다지 행복(幸福)하지 않다
불행(不幸)과 무행(無幸)이 지속되는 것이
인생이라는게 내 생각이다

그럼에도 살 수 있는건
단지 불행을 견디는 방법을 체득한 것일 뿐
행복을 찾아 헤매거나
행복의 바다에서 허우적 거리기 때문이 아니다



사실 나는 대다수의 다른 사람들도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절대적이든 상대적이든
나 정도는 꾀병이라 여기게 할만한
힘든 시간을 거쳤고
힘든 삶을 사는 사람들도
주변에 꽤나 많이 보아왔기도 하거니와

그들도 행복하지 않은 상태를 견디는
나름의 방법을 체득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어쩔 수 없지만)





행복은 흔하지 않기 때문에
반복해서 강조되고 읊어지는것 아닐까




나와 안팎으로 관여된 사람들의 만족을 위해서
내가 쥐고있지 않은 행복을 가지고 있노라고
고백 당하는 것은 사실 협박이다

심지어 전 세계 인류의
최대 1/3, 최소 1/4을 차지하는 비관주의자들에게
행복하지 않다고 말할 자유를 뺏거나 조롱하는 것은
자아를 강탈하는 것이요
일말의 발언권을 훼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무슨 상관이겠냐마는
너무나 행복해서 미칠 것 같다는 말도 하고...
그러나 행복해서 미치는 사람보다는
불행해서 미치는 사람들이 분명히 훨씬 더 많다

그건 대개 행복 보다는 불행이
세상에 보다 많이 뿌려졌다는 반증 중 하나이고

이런 논리가 약간 거지같다고 해도
그래서
용기를 내서 불행을 고백하는 것을
뻔뻔하다거나 무례하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좀 많이 재수없다



사춘기 이후부터 나름 버티고 있는
내 불면증과 낮잠불가능한 내 생리를
견디는 것도 힘들어 하는 것도 나니까
어떻게 해보라고 꼬집지 말자

내가 해보지 않은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힌거지
반성하는 마음에 말문이 막힌 게 아니니까




어쨌든
불행하다는 사실을 부정 당한는 건
삶을 더 불행하게 만드는 일이다
혹은 나 정도면 행복한 거라고
자위하는 것도 사실 좀 보기 불편하다

힘든 건 힘든 거고
그래서 불행하면 불행한 거다
불행한 삶을 산다고
꼭 극단적인 결정을 하는 것도 아니고
행복하다고 해서
극단적인 결정을 안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이렇게 저렇게 살다보니
이렇게도 되고 저렇게도 되는거지
인과관계의 간극은 아무도 모른다

15억짜리 집에 살아도 실직 하나에
일가족을 죽이고 차마 자신은 어쩌지 못해
살아남은 아버지도 있고
이러니 저러니 시골로 귀촌해서
재산 까먹는 재미에 사는 가족도 있다

치킨과 아이스크림 한통에
행복한 사람도 있고
치열한 경쟁에서 성공하고 돈도 많지만
저 혼자 불행해서 세상 안녕한 사람도 있다





자기 찻잔이 어떻게 생겨먹었는 지는
자기만이 아는 거고
그걸 태풍인지 핫쪼꼬인지
맛을 보는 것도 그 사람의 몫이다









p.s. 1
애초에 밑 빠진 독인데 그걸 어떻게 하냐고요
그리고 나만 그런 것도 아니지만
다들 줄줄 새는 자기만의 구멍이 있잖아요...



p.s. 2
영화 대부를 보면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걸 다 하지만
대부의 주름마다 불행이 시커멓게 들어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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