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 일상의 영감] 여섯 번째 인터뷰: 탠슬리 박상준 대표
인간이 가진 다섯 가지 감각 중 오직 후각만이 기억을 담당하는 뇌 부위인 해마 시스템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어떤 뉴런은 냄새에, 어떤 뉴런은 위치에 반응하고 이 뉴런들은 모두 섞여 있기 때문에 후각은 특히나 공간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맛있는 버터 냄새가 풍겨오는 베이커리’, ‘축축한 풀 냄새가 나는 잔디밭’처럼 냄새로 장소를 떠올린다. 이렇듯 모든 공간은 고유의 향을 가지고 있으며 깊은 인상을 심어주기 때문에 많은 브랜드 공간에서 향을 통한 브랜딩에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 공간의 향을, 향으로 기억을 만들어 가는 브랜드가 있다. 공간 조향 브랜드 르미뉴 어를 만든 주식회사 탠슬리의 박상준 대표를 만났다.
Q. 탠슬리를 설립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A. 우선 탠슬리라는 이름은 최초로 생태계라는 용어를 정의한 생태학자 아서 탠슬리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어요. 요즘 생태계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잖아요. 저희는 산업에도 생태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최근 기사들을 보면 대기업은 엄청나게 부자가 되어가고 중소기업은 폐업률이 배수로 올라가고 있다고 해요. 결국은 중소기업이 살아야 대기업들도 하청을 할 수 있는 건데 이 상태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죠. 그러면 스타트업들이 대기업을 이기는 방법이 뭘까 고민했어요. 생각보다 방법은 간단해요. 힘을 합치는 거예요. 그래서 단순히 으쌰으쌰 하면서 “같이 술 한잔하자”가 아닌, 실질적으로 수익을 공유할 수 있는, 이익 기반의 컨소시엄을 만들고자 탠슬리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Q. 중소기업 생태계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바탕으로 회사를 창립했다고 하셨는데요, 그러한 문제점을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A. 제 친구 중에는 제조업 기반 대표님들의 2세들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7~80년대에 중공업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제조업이 막 치고 올라갔을 때가 있었죠. 그때 발전한 사업체들의 아들 세대가 저희 세대인 거예요. 사업을 물려받아야 하는 시점이죠. 하지만 아버지가 갖고 있던 자료들을 지금 세대의 대표들이 활용하기는 어렵고 마진율은 까딱 잘못하면 점 단위 원보다 낮게 내려가는 수준이 되면서 재정이 너무 힘들어지는 거예요.
한편 저는 회사에 다니면서 제품을 만들고 있었는데요, 하나의 제품을 만들 때 생각보다 많은 협력업체가 필요해요. 탠슬리의 자회사인 르미뉴어에서도 향수 하나를 만드는 데 약 6개 정도의 업체와 거래를 해요. 라벨 만드는 업체가 따로 있겠고요. 종이만 맡기는 업체도 있어요. 이렇게 하나의 제품을 만드는 일에 다양한 업체들이 이익 관계로 얽혀 있다 보니 소통이 중요해져요. 일을 하면서 업체로부터 10만 원짜리 계약을 열심히 작업해 줄 이유가 없다는 반응을 되게 많이 받았어요. 저희가 아무리 열심히 해보자 해도 외부 업체에는 동기부여가 되지 못하는 거죠. 그러다 보니 티키타카도 안되고, 이 업체 저 업체에 내용을 전달하는 데에 불필요하게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모돼요. 만약 대기업처럼 내부적으로 전부 해결했더라면 하루 이틀이면 끝날 일을, 답변을 기다리고 업체 스케줄을 맞춰 주다 보면 1주 2주까지도 걸려요. 이런 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탠슬리의 설립에 많은 영향을 줬죠.
Q. 탠슬리에서 공간 조향 브랜드인 르미뉴어를 출시했죠. 다른 제품이 아닌 향을 제작하는 브랜드를 만들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A. 실질적인 이유부터 말씀을 드리자면 제가 사업을 시작할 시기에 향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있었고 시장 조사도 꾸준히 했었어요. 마침 향 관련 제조업만 8년 정도 해오신 대표님과 친분이 있었고 서로 의견이 맞았죠. 저는 디자인 실력을, 그분은 기술을 가지고 있으니 서로 협력하면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으리라 생각해 조향 브랜드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감성적인 이유를 말씀드리자면, 향만큼 불분명한 감각이 없어요. 하지만 그만큼 확실한 기폭제가 될 수 있는 감각도 없죠. 실제로 기억을 담당하는 뇌 기관 중과 가장 크게 연관된 감각은 후각이에요. 혹시 할머니 집 냄새 기억하세요? 누군가는 할머니 집 화장실 냄새, 누군가는 장롱 냄새, 누군가는 구수한 음식 냄새를 떠올려요. 어떤 주제에 대해 향을 떠올리라고 하면 다들 나름의 향을 떠올리죠. 전 그게 되게 재밌었어요. 시각은 그렇게 못하거든요. 명확한 주체가 없는데도 뭔가 소통이 되는 유일한 감각이 후각이에요. 그래서 예전부터 후각을 활용한 작업을 하고 싶었고 실제로 졸업 전시 때도 후각과 관련한 기획을 했어요. 그렇게 관심사를 이어오다 어느 순간 보니까 향을 만들고 있더라고요.
Q. 르미뉴어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분들하고 협업해서 전시했었는데요, 그때의 협업이 르미뉴어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A. 르미뉴어가 만들어졌던 12월에는 콘텐츠를 만들 돈이 없었어요. 고작 2천도 안 되는 돈으로 창업했고 그 돈으로는 제품을 만드는 것도 빠듯했거든요. 당시에 저희가 투자할 수 있는 건 시간, 의지, 그리고 공간 하나를 빌려볼 수 있을 정도의 돈이었어요. 보통은 그 상황이라면 오프라인 팝업을 생각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했어요. 우리는 탠슬리의 이념에 따라 상생이라는 키워드를 지킬 필요가 있으니까, 협업 행사를 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그래서 인디 그래픽 아티스트들과 협업해서 저희는 작품을 알릴 수 있는 공간과 기획을 제공하고 아티스트들은 콘텐츠를 통해 전시를 홍보하는 형태의 상생으로 시작했어요.
작가 중에는 학생들도 있었어요. 다른 요소는 고려하지 않고 작품의 퀄리티만 보고 작가들에게 연락했거든요. 작가분들 입장에서도 기업과 협업한다는 건 신나는 일이잖아요. 그래서인지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이 직접 주변 사람들, 친구들을 데려오면서 그만큼 저희 브랜드도 홍보가 됐죠. 전시를 통해 상생이 영리적 기업 입장에서도 플러스가 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것이 가장 큰 수확인 것 같아요.
Q. 탠슬리와 르미뉴어는 요즘 어떤 일들을 하고 있나요?
A. 탠슬리는 르미뉴어의 백업 역할을 많이 하고 있죠. 탠슬리에서 하는 사업이 B2C 시장에만 국한되어 있지는 않거든요. 확장성을 가져가려면 르미뉴어만으로는 어려워요. 단단한 배경이 되는 기업체가 필요하고 그 역할을 탠슬리가 해주고 있죠. B2B 사업이나 협업 제안은 탠슬리 측에서 하고 있어요. 사업이 아닌 경우도 있는데, 크리에이터 HR 커뮤니티 사업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회사가 유지되기 위한 고정 금액을 충당하려면 판매 대금만으로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판매하는 만큼 촉진에 필요한 마케팅 비용이 들고, 판매하는 인력이 늘거든요. 결국 향수만 팔아서는 큰돈이 되지 않아요. 회사를 지탱하기 위한 다양한 캐시카우가 필요하죠. 그걸 마련하는 게 탠슬리의 역할이에요.
르미뉴어는 고객 만족에 집중하고 있어요. 지금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그걸 어떻게 고쳐나갈 것인지를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뚜껑이 너무 잘 열린다는 고객 의견이 있으면 비닐 실링을 새로 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식으로요. 실제로 이번에 제품 전량을 회수해 실링을 해서 다시 출고했어요. 결국 B2C는 고객 만족이 기본이에요. 제가 뭔가 아름답고 멋진 말을 하고 싶어서 이렇게 얘기하는 게 아니라, 진짜 그게 정답이에요. 고객의 만족이 돈으로 직결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B2C 대상인 르미뉴어에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고객 만족에 신경 쓰고 있어요.
Q. 탠슬리는 르미뉴어를 포함해 여러 사업들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각각의 사업들이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요?
A. 모든 프로젝트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합니다. 탠슬리가 가장 어려운 이유는 여러 사업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선택과 집중이 많이 흐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에요. 지금 같은 고임금시대에 인원을 많이 뽑을 수는 없어요. 인력 증대가 어려운 상황에서 저희는 구성원 개개인에게 PM급의 권한을 주고 하나의 프로젝트를 관리할 수 있도록 했어요. 이를테면 B2C 담당자는 르미뉴어의 판매량을 올리기 위해 고객들의 소리를 최대한 많이 듣고 무엇을 반영할지 빠르게 판단하는 것에만 집중하는 반면 B2B는 B2C와 타깃이 다르기 때문에 단가와 효과에만 집중합니다.
처음에는 모든 사업이 각자의 길을 갈 수밖에 없어요. 그걸 다 묶으려 하면 짬뽕이 돼버려요.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고… 우리가 장수돌침대를 파는 것이 아니잖아요. 다 좋다고 하면 아무도 믿지 않아요. 가장 큰 장점에 집중해서 그에 맞는 스토리를 부여해야 해요. 그렇게 브랜드를 운영하다가 어느 정도 인지도가 쌓이고 나면 시너지가 발생해요. B2B 사업을 홍보할 때 “이런 브랜드가 있는데 사실은 우리 자회사다. 우리와 일하면 B2C의 인지도를 끌어올 수 있다.”같은 제안을 할 수 있게 되니까요.
Q. 개개인에게 PM 정도의 권한을 부여한다면 팀에는 제너럴리스트들이 많을 것 같아요. 제너럴리스트와 스페셜리스트 중 지금 탠슬리에서 선호하는 팀원은 어느 쪽인가요?
A. 저는 사실 그 두 개의 경계가 모호하다고 봐요. 실무를 하지 못하는 사람은 관리를 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생각보다 실무 못하는 관리자들이 많아요. 실제로 디자인 팀의 팀장이 디자인을 못 하는 경우도 있어요. 디자인의 디 자도 모르지만, 연차 상 관리자급이라는 이유로 팀장으로 넣는 거죠. 디자인을 할 줄 아는 팀장이었다면 사소한 수정사항 같은 것들은 자기가 직접 할 수도 있는 일을, 디자인을 모르는 팀장은 실무자에게 돌려보내야 해요. 그렇게 되면 시간 낭비를 하게 되겠죠.
어차피 스타트업은 스페셜리스트를 뽑을 수 있는 여건이 안 돼요. 개발자만 치더라도 1억씩 쓸 각오를 해야 하거든요. 게다가 요즘엔 스페셜리스트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대부분 제너럴리스트가 챗GPT로도 할 수 있어요. 오히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은 프로젝트가 전반적으로 어떤 일정으로 흘러가야 하는지, 이 프로젝트에서 어떤 방식으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지 판단하는 일이에요.
Q. 르미뉴어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들과 함께한 출시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난 다음 현대백화점에서 입점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때의 에피소드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겠어요?
A. 저희 영업 팀장님이 어느 날 B Clean이라는 곳에서 연락받았다고 하셨어요. 알고 보니까 현대 계열사인 거예요. 그래서 미팅을 잡았는데 미팅 장소도 더현대서울이었죠. 미팅에 나갔더니 담당자분이 전시나 브랜딩이 되게 인상 깊었다고, 더현대에서 르미뉴어를 다루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저희야 너무 큰 영광이었고 바로 프로젝트 일정을 잡았어요.
원래는 더현대와 판교, 목동점에서 일주일씩 팝업 행사를 기획하는 것으로 진행하고 있었는데 프로젝트 진행 중에 목동점에서 따로 연락이 와서 1층 매장에 장기로 들어와 줄 수 없겠냐고 하시는 거예요. 그때 고민을 되게 많이 했죠. 팝업은 돈이 별로 안 들어요. 부스만 제작하면 되고 상주 직원은 단기 알바로 뽑거나 여의찮으면 본사 직원이 나갈 수도 있으니까요. 근데 매장은 영향력이 어마어마한 대신 집기들을 다 따로 제작해야 하고 상주하는 매니저도 고용해야 해서 비용이 많이 들어요. 작은 기업이다 보니 고민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래도 결국 많은 고객이 르미뉴어를 봐주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고 정식 입점을 결정하게 됐습니다.
정말 많이 고생했어요. 짧은 시간 안에 무언가를 준비하려다 보니까 너무 힘들었어요. 백화점에서 향수를 팔려면 불이 났을 때를 대비해 방염 처리라는 걸 따로 해야 해요. 저희는 공간 안에 가구를 제작해서 넣었기 때문에, 가구 제작하는 데에도 품이 따로 들었고요. 기존에 약속했던 기한보다 촉박한 시간 안에 많은 재고를 확보해야 하다 보니 제품 제조사에도 하나하나 전화해서 제가 직접 기계 돌릴 테니 한 번만 도와달라고 부탁했어요. 백화점 같은 대기업들은 보통 입점사를 그렇게 걱정해 주지 않는데도 담당자분들이 저희를 걱정해 주실 정도였다니까요. 이제 내가 밤새 과제를 하던 20대가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어요. 중간중간에 사고 터질 때마다 10년씩 늙었죠. 그래도 어떻게든 수습해서 오픈했을 때는 되게 기뻤어요.
Q. 르미뉴어가 공간에 들어갈 향을 제작하는 브랜드로서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되는 지점이 무엇인가요?
A. 르미뉴어는 기본적으로 스토리텔링이 탄탄한 브랜드예요. 모든 향에 스토리텔링이 되어 있어요. 보통 향수의 향을 설명할 때 톱 노트 미들 노트 베이스 노트로 설명하잖아요. 저희는 오프닝 노트 브릿지 노트 링거 노트로 설명해요. 각각 하루를 여는, 연결해주는, 그리고 마지막에 남는 향인 셈이죠.
르미뉴어는 처음에 룸스프레이로 시작했어요. 보통 룸스프레이는 침대에 많이들 뿌리곤 할 거예요. 그 상황을 바탕으로 페르소나를 설정하는 거예요. 집에 들어와서 씻고 룸스프레이를 뿌렸을 때, 그다음 침대에 누웠을 때 느끼고 싶은 감정이 무엇인가, 자다가 순간순간 깼을 때 맡고 싶은 냄새는 무엇인가, 눈을 떴을 때 아침 햇살을 맞으면서 맡고 싶은 냄새는 무엇인가 생각했죠. 이걸 하나하나 소비자한테 전달하기는 힘들겠지만, 페르소나를 고려하고 안하고의 차이는 명확할 거로 생각해요.
또 저희는 B2B 쪽을 공략할 수 있어요. 같이 활동하는 대표님이 B2B로 발향 기기를 통한 공간 발향을 하시던 분이에요. 그쪽에서 8년간 철학을 지켜오신 분이죠. 그런 배경을 가진 대표와 디자이너인 제가 만들었기 때문에 다른 브랜드보다는 공간에 대한 고민이 조금 더 깊지 않을까 싶어요.
Q. 탑노트, 미들노트, 베이스노트라는 개념은 조향사 입장에서 만든 말이잖아요. 반면 오늘 하루를 시작하는 노트인 오프닝 노트는 향수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쓰는 사람 시점에서의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용자를 고려한다는 점에서 디자이너다운 접근법인 것 같은데, 대표님은 학부 때 제품디자인을 전공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학부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경험이 탠슬리의 브랜드 운영과 전략 수립에 어떻게 영향을 주고 있나요?
A. 2학년 때 교수님께서 저보고 “너는 기획자다”라고 하셨어요. 한국에서는 기획자와 디자이너를 분리해서 이해하지만, 해외에서는 기획자를 디자이너라고도 해요. 저에게 그 말을 해주신 교수님도 서비스를 기획하고 그걸 쓰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공감하는 것이 디자이너라고 말씀을 해주셨고, 그때부터 기획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제품 스케치보다는 마인드맵을 그리기 시작했고 남들이 5가지 페르소나를 만들 때 저는 100가지 이상의 페르소나를 만들었어요. 남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습관이 그때 생겼고 지금 브랜드를 운영하면서도 시장의 반응을 살필 때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
Q. 이제 경영과 관련한 질문으로 넘어가 볼게요. 실무자와 경영자 중에 어느 쪽에 더 큰 비중을 할애하고 계신 지, 또 각각의 포지션에서는 어떤 가치를 추구하시는지 여쭤보겠습니다.
A. 아주 명확합니다. 경영자가 해야 할 일은 회사가 버틸 수 있게 자금을 만들어 내는 거예요. 회사가 버티면 뭐든지 돼요. 버틸 수만 있으면 뭐라도 만들 수 있는데 버티지 못하면 아무것도 못 하죠. 우리 회사도 한번 파산 직전까지 갔었고 그래서 구성원들이 떨어져 나가는 경우도 있었어요. 좋은 조직 문화, 복지도 물론 좋아요. 하지만 그게 있으려면 근본적으로 돈이 있어야 해요. 아무리 복지가 좋아봐야 3개월 있다가 월급을 못 주면 의미가 없잖아요. 경영자의 가장 큰 덕목은 안정적인 직장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예전에 퍼스널 브랜딩을 할 때 저 스스로 실무형 대표라고 광고를 많이 했었는데요, 지금 생각해 보면 잘못된 방향인 것 같아요. 경영자가 직접 실무에 뛰어들면 실무진들이 일할 수가 없어지거든요. 그렇게 하면 매사에 대표의 의견을 따라가게 돼 있어요. 지금 탠슬리에서 의견이 갈릴 때는 다수결로 결정해요. 팀 내부에서 더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밖에 나가서도 더 많은 사람이 좋아할 가능성이 더 높잖아요.
실무진에게 실무를 맡기면 책임 소재가 나뉘어요. 제가 다 책임을 저버리면 어떤 문제가 생기냐면, 사람들이 “뭘 해도 어차피 대표가 책임질 거고 대표가 할 거니까 그냥 이 정도만 하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게 돼요. 그렇게 되면 퀄리티가 낮아지기 시작하겠죠.
Q. 대표님이 생각하시는 가장 효과적인 마케팅이란 무엇인가요?
A. 마케팅은 정답이 없어요. 어제 성공한 마케팅이 오늘은 또 실패해요. 솔직히 운칠기삼이 정확한 표현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사례를 답습하거나 그들에게 맡기는 것이 능사가 아니에요. 그 사람들도 분명 성공 레퍼런스가 있고 성공했어요. 하지만 그걸 그대로 오늘 사용하려고 하다 보면 실패할 수도 있는 거죠. 근데 그나마 변하지 않는 것 하나는 퍼포먼스 마케팅이라고 생각해요. 당장에는 어려울 수 있어요. 왜냐면 초기 사업의 경우엔 표본 집단 자체가 적잖아요. 오늘 방문자가 12명인데 내일 24명이 되어봤자 의미 있는 증가라고 보기는 어렵잖아요. 하지만 적어도 그 변화 추이는 고민을 해볼 수 있어요. 변화를 보고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이를테면 ‘특정 페이지에서는 전환이 안 되네’, ‘상품이 비싸구나’ 혹은 ‘상품 상세 페이지가 매력이 없구나’와 같은 피드백을 하는 것이 의미가 있죠. 그러면서 계속 스스로를 갈고닦아야 해요.
인지도를 높이는 데 있어서 실질적인 방법을 물어본다면 지금 당장은 메타 광고가 가장 빠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메타 광고는 10만 원이라는 금액으로 1만 명 이상에게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에요. 메타 광고는 CPC라고 하는 방식으로 광고비를 지불하게 되어 있어요. 클릭했을 때 금액이 발생하는 방식이잖아요. 설문조사처럼 복잡하고 귀찮지 않다는 가정하에 콘텐츠만 괜찮다면 가성비가 꽤 좋아요. 만 명이 봐도 3만 원밖에 안 나오거든요. 한 번 노출로는 효과가 없겠지만 두 번, 세 번 거듭해서 계속 보이면 브랜드가 각인되기 시작해요. 인내심이 있다면 합니다.
Q. 회사를 운영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인가요?
A. 백화점 입점 준비할 때 제일 힘들었어요. 그 외에도 대부분 과도한 업무에 시달릴 때 힘들었던 것 같아요. 아까 말씀드렸던 실무자형 대표가 좋지 않은 이유는 대표의 건강이 상한다는 거예요. 실무는 실무대로, 경영은 경영대로 해야 하니까요. 잠을 줄이고 몸을 갈아가면서 일을 하는데 회사는 성장하지 않고, 머리로는 기다려야 하는 걸 알지만 실제로 일을 하다 보면 마음이 생각처럼 편하게 먹히지는 않아요.
쉬는 시간이 없다는 것도 문제예요. 사무실에 앉아 있는 시간에만 일을 하는 게 아니거든요. 자기 직전까지도 다음 달 월급 걱정을 해야 하는 게 대표예요. 혹시라도 계속 생각을 해보면 뭔가 답이 나올 것 같지만 사실은 안 나오거든요. 그래서 답을 찾을 때까지 쉬는 시간이 없어지는 거예요.
Q. 커뮤니케이션 팁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A. 저도 지금 사용해 보고 있는 방법인데, ‘긍정 부정 긍정’을 많이 활용하라 하더라고요. 어떤 작업물을 보고받았을 때 보통 “이거 좀 별로야” 아니면 “이거 바꿔야 해” 아니면 칭찬이더라도 그냥 “이거 좋다”라고 말하잖아요. 그런데 긍정 부정 긍정은 “이거 작업물이 너무 좋아. 그래서 이 부분 좀 바꿔줄 수 있을까? 진짜 너무 잘했어”라고 얘기를 하는 방법이에요. 이렇게 말하면 수정 요청도 부드럽게 할 수 있죠. 여기에 사용된 또 다른 기법이 ‘역접 사용하지 않기’인데요, 두 번째 문장을 말할 때 ‘그런데 이 부분 좀 바꿔줄 수 있을까?’가 아니라 ‘그래서 이 부분 좀 바꿔줄 수 있을까?’라고 했잖아요. 이렇게 말하면 부정적인 맥락이라도 절대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아요. 표면적으로는 긍정적인 단어들만 있으니까요. 처음 쓸 때는 어색해요. 그런데 상대방이 못 알아듣지는 않아요. 피드백과 비난은 한 끗 차이거든요. 그래서 사소해 보이더라도 이런 노력이 중요하죠.
회의가 너무 길면 안 돼요. 탠슬리에서 회의는 필요할 때 저한테 요청하면 하는 식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정기 회의가 있다거나 하지 않아요. 언제든 제 방으로 컴퓨터를 들고 와서 TV에 연결만 하면 바로 회의를 시작할 수 있게끔 했어요. 그리고 전 PPT 만드는 거 싫어해요. 솔직히 말하면 “노션에 정리해 뒀으니까 읽어주세요”가 제일 좋아요. 회사에서는 필요한 대화만 하면 돼요. 직원들은 절대로 따뜻하게 대화해 주는 대표를 원하지 않아요. 말 걸지 않는 대표를 좋아해요. 피드백은 확실하게 빠르게, 회의는 필요할 때만 짧게.
Q. 박상준 대표님의 영감의 원천은 무엇인가요?
A. 제 영감의 원천은 숫자입니다. 결국은 영감이라 해도 순수 예술가가 아닌 이상 그 영감이 향하는 목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디자이너나 사업가는 영리적인 목적을 추구하잖아요. 그러면 결국은 제가 얻는 영감도 결국 고객 만족으로 이어져야 해요. 그리고 저는 고객 만족을 가장 잘 끌어내는 것이 수라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읽을 예비 창업자들한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A. 창업한다는 건 취업을 하는 것과는 아주 달라요. 창업하는 순간 가족이 생기는 것과 똑같아요. 아이를 낳는 것과 같죠. 인생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달라져요. 먼저 창업가들은 창업가가 아닌 사람들과 생각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져요. 최근에 제가 되게 재밌게 봤던 글이 있는데 어떤 회사가 복지로 직원들한테 주차장을 만들어줬대요. 근데 이 주차장을 확장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확장 공사도 복지예요. 다 회삿돈으로 공사를 하는 거잖아요. 아무튼 공사 때문에 한 달간은 주차가 불가능하다고 했죠. 그렇다면 차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은 주변 유료 주차장을 이용해야 하는데 그 주차장 주차비는 누가 내줘야 하냐는 거예요. 회사는 돈을 써서 공사까지 하는데 주차비도 내줘야 하냐는 입장이고 직원들은 없던 주차비가 회사 사정으로 생겼는데 회사가 내줘야 한다는 입장이죠. 창업하게 되면 전자가 당연해지는 거예요.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일반 근로자인 친구들이랑 대화하기도 어려워지고 공감대가 없어져요. 그래서 되게 외로워지죠.
내가 되고 싶은 게 그저 멋있는 대표라면 시작하지 않는 편이 좋아요. 그렇다고 해서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해서 인류에 기여하겠다는 목표까지는 없어도 되고요. 그저 내가 가지고 있는 아이템이 충분히 세상에서 먹힐 것 같고 그 시간 동안 내가 버틸 자신이 있다면 시도해 보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창업자분들한테 하고 싶은 가장 중요한 얘기는 ‘흔들리지 않기’에요. 많은 사람이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사업을 하겠다는 거잖아요. 심지어 창업한 저도 창업하지 말라고 하고 다니는걸요. 하지만 그런 반대를 이기고 결국 창업하려 했던 마인드만큼은 잊지 말아야 해요. 어느 순간 너무나도 힘이 들 때 그 마음을 떠올려야 합니다. 한 번 사업을 시작하면 뒤로 무르기가 어려워져요. 평생 사업을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 돼 가요. 어쩔 수 없어요. 왜냐하면 그만큼 커리어에 공백이 생길 거고요. 어디 취업하려고 해도 실패한 CEO라는 꼬리표 때문에 취업도 어려워질 거예요. 결국은 어느 정도 일정 이상 사업의 세계로 들어오게 되면 계속 사업을 해야만 하게 될 겁니다. 그래서 시작하기 전에 많이 고민해 보시고 그래도 사업이 하게 된다면 웰컴입니다.
제가 항상 하는 이야기 중에, 사업하는 사람들은 딱 한 가지 특권이 있다고 얘기를 해요.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롤스로이스 페라리를 끌 수 있는 건 사업가밖에 없어요. 사업을 한다고 해서 전부 다 그걸 끌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걸 살 유일한 기회는 사업일 가능성이 높아요. 적어도 돈을 정말 많이 벌고 싶다면, 돈을 많이 벌 기회라도 얻고 싶다면 용기를 내세요. 그 용기로 인해서 잃을 게 되게 많긴 하겠지만 아무튼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