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81)
정선 땅 ‘고한’은 ‘고토일’과 ‘물한’을 붙여 지어낸 땅이름이다. 자연히 ‘고토일’과 ‘물한’이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지 알아야 비로소 그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 글은 ‘고토일’의 말밑을 톺아보려고 한다.
떠도는 말로는 고려 중기에 사람들이 들어와 이곳에 와서 맨 처음 자리잡은 곳으로 땅힘이 좋고 오래된 땅이라는 뜻이라고 하여 ‘고토일’(古土日)이라고 했고 1960년대 태백산지 탄전을 개발하면서 마을이 커졌다고 한다. ≪고한읍지≫(2006)에는 “고토일은 입구는 좁은 계곡 형으로 되어 있으나 들어갈수록 농사를 짓기에 적합한 분지형 토지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면서 “일제강점기를 거쳐 1960년대 이전까지는 메밀, 귀리, 감자, 청밀(호밀) 등을 주로 재배해 주식으로 삼”았다고 한다.
고려 때부터 이미 이곳에 실제로 사람이 와 살았는지 알 수 없으나, 내 보기엔 만항재(늦은목이, 1341m) 유래와 얽어 생겨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일설에는 고려말 조선조 초기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광덕산 서쪽 기슭 두문동에 은거해 살던 사람들이 언젠가 고향에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이 지역의 제일 높은 만항에서 물 한 그릇 떠놓고 빌었다고 해서 처음에는 ‘망향’이라고 불렀다가 훗날 ‘만항’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말 그대로 ‘일설’일 뿐 딱히 근거가 될 만한 기록이 없다. 정약용이 “삼정 문란 시 유민항열이 산간 화전을 목적으로 고토일에 숨어 지낸다”고 쓴 대목을 들어 진작부터 사람들이 살아온 증거라고 하지만, 오히려 조선 후기까지도 사람을 터잡고 살지 않다가 탐관오리에 쫓긴 백성들이 부데기라도 하고 살 요량으로 들어왔다는 반증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고토일’을 쓴 한자를 ≪훈몽자회≫(1572)에서 찾아보면 녜 고(古), 흙 토(土, 흙의 'ㅡ'는 아래아로 씀), 나 일(日, 일의 'ㅇ'은 'ㅿ'으로 씀) 자를 썼다. 이때 ‘일(日)’은 마을을 뜻하는 ‘실’의 소리바꿈으로 생겨난 말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앞엣말 ‘고토’다. ≪고한군지≫는 “오래된 곳으로 토질이 좋은 땅”으로 뒤쳤지만 이는 한자 뜻에 매달린 게으른 해석이다. 땅이 제아무리 좋다손 쳐도 해발고도 800미터 가까운 곳이다. 겨울은 훨씬 길고 여름이 짧을 수밖에 없고 그나마도 감자, 호밀, 귀리, 메밀을 화전(부데기)으로 겨우 부쳐 먹을 만큼 거친 땅이었다. ≪고한읍지≫을 보면, 고한읍은 논 농사는 전혀 하지 못하고 밭도 정선군에서 가장 적다. 2005년 12월 기준으로 농경지는 38ha로 정선군 전체 농경지의 0.48%다. 그렇기 때문에 땅이 좋은 오래된 땅이라는 한자 해석에 기대지 말고 실제 땅 모양을 살펴야 한다.
≪조선지형도≫(1917)에서 마을 앉음새를 보면, ‘고토일’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뻗어나온 산줄기 끄트머리에 골 사이로 제법 펀펀한 곳에 집들이 모여 마을을 이뤘다. 보는 눈길에 따라 너른 땅, 늘어진 땅, 느린 땅, 느릿한 땅이다. 이런 땅은 늘 어(於) 자를 써서 어전(於田, 늘밭>늘앗>느랏), 어치(於峙, 느랏재, 느르재), 어흘(於屹, 느러리)로 쓰거나, 누를 황(黃) 자나 잇닿을 연(連) 자를 써서 황산(黃山, 느르뫼), 연산(連山, 느러리뫼) 따위로 둔갑한다.
그렇다면 ‘고토일’에서 ‘고’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너른, 넓은(너분), 느른한’과 같은 그림씨의 [너]나 [녀] 소리를 받아적은 한자로 뒤쳐 생각해봄직하다. 산골치고는 산자락이 길게 늘어지면서 제법 너른 땅이라서 ‘넙>넛>넷>녯’처럼 소리바꿈이 일어나면서 ‘녯→ 고(古), 땅→ 토(土)’로 적지 않았을까. 넛재(태백-봉화), 너그니재(정선군 임계면), 늦은목이(만항재), 느르뱅이(정선군 화암면) 같은 땅이름에서 보듯 ‘너르다, 넓다, 느리다’는 땅이름에서 다양하게 나타난다. 고토일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고일(古日)’이란 곳이 있다. 이곳도 고토일과 땅 모양새가 어슷하다. 물론 ≪정선 남면 지명유래≫(정선군 남면, 2011)엔 “지억산 능선 아래에 있는 높은 마을이라는 뜻에서 ‘고(高)’ 자와 마을을 뜻하는 ‘일(日)’ 자가 합쳐져 생긴 지명”(163쪽)으로 보아야 한다고 했지만, 지억산 줄기가 느릿하게 흘러내린 곳이라는 고토일과 공통점이 있다.
요컨대, ‘고토일’의 땅이름 유래를 말한 기록을 보면 ‘땅힘이 좋은 오래된 땅’이라고 했지만 한자 해석에 머물렀다는 한계가 있다. 산줄기와 골짜기, 마을 앉음새를 찬찬히 살피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보기엔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 보기 드물게 농사를 지을 만큼 비탈이 늘어진 ‘너른 땅’이라서 붙은 이름이다.
[또 다른 생각]
‘고일’은 ‘골실’에서 온 땅이름일 수도 있다. ‘골실’에서 ‘골일’이 되는데 이때 ‘ㅇ’ 앞에 있는 ‘ㄹ’이 떨어지면서 ‘고일’이 된다. ‘골실’이나 ‘골일’의 ‘골’은 물론 ‘골짜기(谷)’나 ‘마을’을 뜻한다. 그러므로 ‘고일’은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마을이 어디에 있는가를 잣대로 삼아 붙인 이름 짓기다. 들판에 있는 마을은 ‘들말, 벌말’, 산에 있는 마을은 ‘묏골, 산말’이라고 하듯이 골짜기에 낀 마을이라면 얼마든지 ‘골말’이라고 할 법하다. 그런데 ‘골실’이 ‘고일’로 바뀌면 ‘고’를 더 이상 ‘곡(谷)’이란 뜻으로 쓰지 않고 소리가 같은 한자 ‘고(高)’나 ‘고(古)’로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고일’을 ‘높은 곳에 있는 마을’이나 ‘예부터 있던, 오래된 마을’로 해석하고 ‘고일(高日)’나 ‘고일(古日)’로 쓰는데, ‘골짜기에 있는 마을(谷日)’은 아주 다른 뜻이 된다. 가령, 골짜기 사이에 흐르는 내라고 해서 ‘골내’라고 하다가 ‘고내’로 소리바꿈이 일어난 뒤에 한자로 적으면서 ‘고내(高川)’나 ‘고내(古川)’으로 둔갑한 내 이름이 적잖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