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말로 굴려 빚은 땅이름, 사부랑

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88)

by 이무완

[일러두기] 위 사진은 <공유마당>에서 내려 받은 사진입니다. '사부랑'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사부랑’, ‘사시란’

둘다 땅이름인데, 가만 소리내어 보면 말이 얼마나 구르고 구르면 모난 데 하나 없이 이토록 부드러울까 싶다.

‘사부랑’은 정선군 사북읍 직전리에 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는 배달말 이름을 한자 뜻이나 한자 소리로 받아적으면서 ‘사부랑’이 되었을 터다. 하지만 말밑을 얼른 떠올리기란 결코 쉽지 않다.


혼자 생각이지만 사부랑은 ‘삿+불+안’이 줄어들면서 생겨난 땅이름으로 보인다. 골 사이라고 해서 ‘사이’의 옛말인 ‘삿(샅)’을 쓰고 ‘불’은 산을 뜻하는 ‘붇’에서 온 말로 볼 수 있겠다. 가령, 붇(산) 안쪽 마을이라고 해서 ‘붇안골(>불당골)’이요, 붇 사이에 있는 소(沼)라고 해서 ‘붇(으)소(>부처소)’요, 붇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붇실(>북실)’이라고 했다.


일제강점기인 1918년 조선총독부에서 낸 <조선지형도>에 보면 사부랑은 해발 1060미터, 1150.2미터에 이르는 산이 북동쪽에 있고, 남쪽으로 1062.4미터에 이르는 산이 남동쪽을 휘감고 가는, 그야말로 사잇골이다. 옛사람들이 보기에 불(산) 사이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삿불안’이라고 했고 이 말이 ‘삿부란’을 거쳐 ‘사부란/사불앙/사부랑’으로 소리바꿈해서 굳어진 듯하다. 배달말 땅이름인 ‘사부란/사부랑’을 한자로는 沙(모래 사), 浮(뜰 부), 浪(물결일 랑) 자를 빌려 적은 셈이다.

<조선지형도>(1918)와 국토정보지리원 지형도(2013)에 보이는'사부랑'

정선읍 봉양리에 ‘사시란’이란 마을이 있다. 가리왕산 한 자락인 민둥산 남서쪽 산줄기에 있는 마을로 한자식 땅이름은 ‘생탄(生呑)’이다. 떠도는 말로는 사시사철 따뜻한 마을이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하지만 말 지어내기 좋아하는 사람들 말장난일 뿐이다. 생탄(生呑)은 ‘사이’를 뜻하는 지역말 소리인 [생이]와 예부터 높은 곳(산)을 가리키는 ‘탄’을 붙여 쓴 말로 볼 수 있다. 조선 후기 정선군수를 지낸 오횡묵이 쓴 ≪정선총쇄록≫(1888)에는 ‘牲呑(생탄)’으로 적어서 ‘생’이 뜻이 아니라 소리를 받아적은 한자임을 알 수 있다.


뒤엣말 탄(呑)은 고탄(古呑), 조탄(照呑), 사탄(史呑) 같은 땅이름에서 보듯 산을 가리킨다. ≪춘주지≫(엄황, 1648)에 “고란산(古蘭山) 부 북쪽으로 35리 거리에 있다. 일명 고탄(古呑)이다. 본래 고구려 석달현(昔達縣)이었는데 신라 경덕왕이 난산(蘭山)으로 고쳐 우두주에 딸린 현으로 삼았다.”는 대목이 있다. 이 기록에 기대어 보면 ‘고란산≒고탄≒석달≒난산’과 같은 대응이 일어나는데, 결국 ‘산(山)’과 ‘탄(呑)’과 ‘달(達)’은 한자만 다를 뿐 같은 뜻을 나타내는 말이다. ≪정선읍 지명유래≫(정선읍, 2012)는 ‘사시란’은 “‘사이’를 뜻하는 ‘삿’과 ‘골짜기’를 뜻하는 ‘실’이 더해진 ‘삿실’이 ‘사실’로 변하고, 여기에 ‘안’이 더해져 ‘골짜기 사이 안쪽 마을’이라는 뜻”이라고 풀어놨다.


이제 마무리하자. ‘사부랑’은 ‘사이’를 뜻하는 옛말인 ‘삿/샅’과 ‘산’을 뜻하는 옛말 ‘불/붇’과 ‘안’을 묶어 지어낸 땅이름이다. 처음엔 ‘샅불안’이다가 그다음엔 ‘삿불안’이다가 ‘사불앙’이다가 ‘사부랑’이다가 ‘사부랭이’도 되었다. 시간이 흘러 흘러 먼 뒷날에 가면 또 다른 이름이 될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산 사이 골 안에 있는 마을이란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배달말 한입 더

사부랑대다 묶거나 쌓은 물건이 바짝 다가붙지 않고 좀 느슨하거나 틈이 벌어져 있다.

사부랑사부랑 주책없이 쓸데없는 말을 자꾸 지껄이는 모양.

사랑눈 경상북도 지역말인데, 싸라기눈(싸락눈)을 가리킨다. 빗방울이 찬바람을 만나 쌀알처럼 얼어 떨어지는 까닭에 싸락싸락 소리내며 내린다고 해서 붙은 이름인데, 싸락눈이 사락눈으로 된 다음 사랑눈으로 소리바꿈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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