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87)
정선군 남면에 ‘민둥산’이 있다.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억새 관광지로 정선군은 자랑하지만 정작 정선군청 남면 ‘지명 유래’에서 ‘민둥산’은 쏙 빼놓았다. 아마도 ‘민둥산’이란 이름은 벌거숭이산, 붉은산을 가리키는 보통이름씨로 쓰다가 1990년대 이후에 억새군락지로 이름나면서 고유이름씨로 자리잡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1991년 11월 12일치 ≪조선일보≫ 25면을 보면 <능선마다 은빛 물결: 억새풀 명산>이라는 기사에 고유이름씨로서 ‘민둥산’을 찾을 수 있다.
민둥산(1119m) 정선군 남면 별어곡과 증산 사이에 펑퍼짐하게 솟아있다. 수십 만평에 달하는 주능선 일원이 온통 키를 넘는 억새밭으로 뒤덮여 있어 산악인들로부터 전국 제일이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능선을 따라 정상에 이르기까지 30여분이나 억새밭을 뚫고 걸어야할 정도. 또 정상에서 바라보면 북쪽 지억산으로 이어지는 긴 능선이 마치 황금가루를 뿌려놓은 듯 억새군락으로 덮여 있어 탄성을 자아낸다.
≪조선지지자료≫(1911), <조선지형도>(1918)를 비롯해 1990년 이전 기록엔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민둥산’은 1990년 이후에 와서 비로소 붙은 이름이라고 하겠다.
‘민둥산’은 어떻게 생겨난 이름일까? 내 보기엔 두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나무가 없는 산, 곧 벌거숭이산이란 뜻으로, ‘민둥+산’으로 쪼개 생각해볼 수 있다. 배달말에 ‘민둥하다’는 말이 있다. 산에 나무나 풀이 우거지지 않아 반반하다고 할 때 ‘맨송맨송하다’, ‘맨동맨동하다’고 한다. ‘맨동맨동하다’보다 큰 말이 ‘민둥민둥하다’인데 민둥산은 민둥민둥한 산이라서 붙은 이름일 수 있다.
한편, 18세기 기록엔 나무가 없는 산을 ‘믠뫼’나 ‘뮌산’이라고 했다. ‘믠’은 ‘믜다’에서 온 말로 앞가지로 쓴 말이다. 민꽃, 민무늬, 민소매, 민머리에서 보듯 ‘없음’의 뜻을 보탤 때 앞가지 ‘민’을 쓰는데 ‘믠’이 말밑이다. ‘믠뫼·믠산’은 곧 ‘민뫼·민메·민산’으로 바뀌는데 나무가 ‘없는’ 산을 말한다. 1936년 11월 18일치 ≪조선일보≫ 5면에 보면, <조선어표준말모음(13) 첫재, 가튼말>에서 “민둥산(名) 禿山 믠둥산”으로 나온다. 뒤이어 “민머리(名) 白頭, 禿頭 믠머리”도 볼 수 있다. 한자 독(禿)은 ‘대머리’란 뜻이다. 이렇게 보면 ‘민둥산’은 ‘믠산’에서 온 말로 볼 수 있는데, ‘둥’은 어디서 왔을까 하는 물음이 인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보면, 아이 동(童) 자를 쓰는 ‘동산(童山)’이 있다. “초목이 없는 황폐한 산”으로 풀어놨다. 흔히 한자 동(童)을 ‘아이’로만 새기지만 ≪훈몽자회≫(1527)에 보면 “아해 동 又山無草木曰童(또 산에 초목이 없을 때 ‘동’이라고 한다)”으로 풀어놨다. ‘없음’을 뜻하는 앞가지 ‘민-’과 나무나 풀이 없는 ‘동산’을 붙여 ‘민동산’이라고 했다가 민둥산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자연히 ‘동산’만으로도 벌거숭이산인데 왜 ‘민-’을 붙였을까 하는 물음이 있을 수 있다. 내 보기엔 ‘동산(童山)’으로만 썼을 때 “마을 부근에 있는 작은 산이나 언덕을 가리키는 ‘동산(東山)’과 헛갈릴 수 있거니와 ‘헐벗은, 나무가 없는’ 뜻을 한결 또렷하게 할 요량으로 ‘민-’을 붙였을 수 있다. 동해바다, 고목나무, 모래사장, 외갓집, 상갓집, 단발머리 같은 겹말이 생겨난 이치와 같다.
‘민둥산’은 어느 쪽이라고 딱 잘라 말하긴 쉽지 않다. 다만, 한자로 쓴 산 이름들 사이에 배달말 산 이름은 드물어 더 귀하다 하겠다.
맨송맨송하다 산 따위에 나무나 풀이 우거지지 아니하여 반반하다.
민둥하다 산에 나무가 없어 번번하다.
덤부렁듬쑥하다 수풀이 우거져 그윽하다.
메숲지다 산에 나무가 울창하다.≒숲지다.
다옥하다 초목 따위가 자라서 우거져 있다.
우거지다 풀, 나무 따위가 자라서 무성해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