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줄기가 갈리고 산줄기가 갈리는 자리, ‘갈래’

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86)

by 이무완

[일러두기]위 사진은 갈래 중에서도 ‘중갈래’(물한)지역 모습이다。


정선 고한읍에는 ‘갈래’라는 곳이 있다. 오늘날 갈래는 상갈래·중갈래·하갈래로 나뉜다. 정암사에서 갈래초등학교까지는 ‘상갈래’, 갈래초등학교에서 고한초등학교까지는 ‘중갈래’, 고한초등학교에서 고토일까지는 ‘하갈래’라고 한다. 중갈래는 1970년대 석탄 산업 전성기 시절 지장천을 중심으로 고한읍 중심지 구실을 했다.

그런데 ‘갈래’는 어디서 말미암은 땅이름일까. 지역에 전해오는 이야기는 정암사가 생겨난 이야기와 맞닿아 있다. 신라 자장법사가 사리탑을 세울 곳을 찾지 못해 애타게 기도하자, 눈 덮인 곳에 세 줄기 칡덩굴이 뻗어 나와 절터를 알려 주었다고 한다. 이에 ‘칡 갈(葛)’을 써서 ‘갈래’라고 했다고 하는데, 이 전설만으로 말밑을 명토박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갈래.jpg 정선군 고한읍 ‘갈래’ <출처: 조선지형도、 1918)

옛 땅이름에서 ‘갈’은 칡만을 뜻하진 않는다. 배달말 ‘갈’은 ‘가리다, 갈리다, 가로지르다’와 같은 말이 뿌리일 수 있다. 길이나 산줄기, 물줄기가 나뉘는 자리를 ‘가리’라고 했고 이 말이 줄어 ‘갈’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우리 땅 곳곳에 ‘가리골, 가락골, 갈말, 갈내, 갈밭’ 같은 땅이름이 수두룩하다. 대개 갈라진 길목이거나 골짜기, 물줄기와 관련이 깊다.

문제는 땅이름을 한자로 옮겨 적는 과정에서 불거진다. 본디 갈라지다에서 나온 ‘갈’을 칡 갈(葛), 가래 추(楸), 가지 지(枝) 같은 한자로 적으면서 땅이름에 엉뚱한 전설이 보태진다. ‘칡 덩굴이 얽혔다’, ‘가래나무가 많다’는 식의 그럴듯한 해석이 생겨나지만 실제 땅 모양새하고는 거리가 멀어지기 일쑤다. (참고할 글: 가래터와 갈밭과 갈전)


정선 ‘가리왕산’도 마찬가지다. 조선 후기 <해동지도>에는 ‘加里王山’으로 나오는데, 일제강점기에 ‘加里旺山’으로 바뀌었다가 2007년 본디 한자 이름을 되찾는다. 다만 산줄기가 여러 갈래로 뻗은 산으로 보아야 할 텐데, ‘갈왕’ 어쩌고 하는, 다소 흐리터분한 이야기가 생겨났다. 이름은 남았지만, 원래 뜻은 흐려진 셈이다.

정선 덕송리의 ‘갈번지’도 흥미롭다. 더러 ‘칡덩굴이 얽힌 곳’으로 풀이하지만, ‘갈’은 ‘칼’을 가리키는 옛말 ‘갈ㅎ’에서 온 말로 보아 ‘높고 뾰죽하다’는 뜻이다. 자장법사가 정암사를 세운 자리로 전하는 ‘갈반지(葛蟠地)’도 같은 맥락에서 톺아볼 여지가 있다. 원래는 ‘높고 뾰죽한 산(갈) 사이에 있는 펀펀한 땅(번지)’이거나 ‘갈이 둘레를 빙 감아 두른 땅’으로 보아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보면 ‘갈래’는 ‘높고 뾰죽한 산(갈) 사이(내)에 있는 땅’이라고 했다가 ‘갈래’로 소리 바꿈한 땅이름일 수도 있다. 결국 ‘갈래’는 자장이나 칡이 얽힌 전설이 아니라 땅 모양새를 살펴서 이 땅에 터잡고 살아온 백성들이 지어낸 이름일 가능성이 크다. 길과 물줄기, 산줄기가 이리저리 갈라진 자리였기 때문에 ‘갈래’라고 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한자 풀이와 전설이 섞이면서 본디 뜻이 희미해지고 말았다.


우리 땅에는 갈, 가리, 갈래가 들어간 지명이 전국 곳곳에 남아 있다. 삼척 갈내(갈천), 철원의 갈말, 정선의 갈고개·갈미, 충북 음성의 가래실 따위가 모두 그렇다. 어떤 곳은 ‘칡이 많았다’, ‘지네가 많았다’는 민담으로 전해 오지만, 조금만 눈여겨보면 길이나 물줄기가 갈라진 곳임을 알 수 있다.

땅이름은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그 땅이 걸어온 역사다. 땅 모양이 말해주는 뜻을 바탕으로 땅을 살피고 땅이름을 들여다볼 때, 우리는 전설보다 더 단단한 배달말의 역사를 만날 수 있다. 갈래도 그런 땅이름 가운데 하나다.

KakaoTalk_20250917_124616223.jpg 상갈래 서북쪽 끄트머리에 있는 갈래초등학교

배달말 한입 더

가랑이 한 몸에서 끝이 갈라져 두 갈래로 벌어진 데.

가르마 이마에서 정수리까지 머리카락을 양쪽으로 갈랐을 때 생겨나는 금.

갈래갈래 여러 가닥으로 갈라지거나 찢어진 모양.

갈래꽃 꽃잎이 낱낱이 서로 갈라져 있는 꽃.

갈래머리 두 가랑이로 갈라땋아 늘인 머리.≒가랑머리.

갈래짓다 둘 이상의 사물 따위를 몇 개의 계통으로 묶다.

갈치 몸이 칼(갈)처럼 납작고 길쭉하게 생긴 물고기. 한자로는 ‘도어(刀魚)’라고도 한다. ≪자산어보≫(정약전, 1814)엔 ‘군대어(裙帶魚)’, ‘갈치어(葛峙魚)’라고 했고, ≪난호어목지≫(서유구, 1820)엔 ‘갈치(葛侈)’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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