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 달린 산, 각희산

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91)

by 이무완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덕암리와 화암면 화암리 살피에 ‘각희산’이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강원특별자치도 정선군 동면과 임계면 사이에 있는 산. 태백산맥에 속하며, 한강의 지류인 송천이 시작하는 곳이다. 높이는 1,083미터.”로 나온다. 정선교육지원청에서 낸 ≪정선을 담다≫엔 “화암동굴 동쪽에 있는 해발 1,083.2m의 산이다. 병풍을 펼친 듯 솟아 있는 산이며, 각희산 자락에는 화암동굴과 화표주가 자리잡고 있다. 각희산 옆 행산과 군의산, 남전산과 지억산 등과 더불어 널리 알려진 산으로 등산객들이 비슬이재에서 올라가 화암동굴 입구로 내려오는데 약 4시간 정도가 소요된다.”고 소개해 놓았다. 그런데 어디에도 ‘각희산’이라는 이름이 생겨난 까닭을 알 수 없다.

≪조선지지자료≫(1911)에는 ‘각희산’은 찾을 수 없고, 남면 능전리에 ‘각희치(角希峙)’라는 고개 이름이 보인다. <대동여지도>(1861)에도 ‘각희산’을 볼 수 없고 ‘능전산’만 있는데, 같은 산을 가리키는지 알 수 없다. <조선지형도>(1917)를 보면, 각희산 정상인 1088.2봉(오늘날 지도엔 1083m)에서 능선을 따라 서쪽으로 700미터쯤 가면 1062봉이 있어서 마치 뿔이 돋은 산처럼 보일 수 있겠다.

각희산(화암리)1-horz.jpg 각희산은 동서남북 어느쪽에서 보아도 뿔이 돋은 것처럼 보인다. 각호산은 동남쪽이나 북서쪽에서 볼 때 봉우리 둘이 뿔이 난 것처럼 보인다.(지도: 조선지형도, 1917)

그래서 비슷한 산 이름이 있는지 찾아 보았다. 마침 충북 영동군 용화면 조동리와 상촌면 물한리, 둔전리 살피에 각호산(1176m)이 있다. 산에 있는 바위가 뿔이나 쌀개처럼 생겼는데 그 아래에 호랑이가 살았다고도 하고 뿔이 둘인 호랑이가 살았다는 유래가 있다. <대동여지도>엔 ‘각귀산(角鬼山)’으로, ≪조선지지자료≫(1911)엔 용화면 조동에 ‘각휘산(角輝山)’으로 나오는데, 군동면 상가리촌엔 ‘각후산(覺后山)’으로 적었다. 아마도 각호산을 각휘, 각후 따위로 적은 듯하다. ≪한국지명총람≫에는 ‘쌀개봉’과 ‘아가리째진산’으로 적었다. <조선지형도>를 보면, 각호산 머리를 이루는 바위봉우리인 1204봉(오늘날 지도엔 1176m)과 1100미터에 이르는 봉우리(1097m봉, 배거리봉)가 보인다. 정선 각희산과 비슷한 모양새라고 하겠다. 보는 눈에 따라서 뿔로도, 아가리 찢어진 모습으로도, 발방아에 딸린 쌀개로도 볼 수 있겠다. 물론 쌀개가 아니라 볼씨가 더 정확한 말이겠지만 쌀개 걸기에 좋겠다는 뜻으로 썼을 수도 있다.

디딜방아_출처농업박물관.jpg 디딜방아. 동해삼척 지역에서는 발방아라고도 한다. (사진:농업박물관)

다시 본줄기로 돌아와 정선군 ‘각희산’은 어떻게 생겨난 땅이름일까. 각희산 정상은 1083.2봉인데 이 봉우리 서쪽으로 봉우리가 우뚝 솟았다. 봉우리 사이가 움푹 들어간 모양새가 되는 까닭에 마치 뿔이 난 귀신인 각귀를 닮았다. 이러한 까닭으로 처음엔 ‘각귀산’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말밑이 뭔지 흐리터분해지고 사람에 따라 [각끼산], [각키산]처럼 말하니까 일제강점기인 1910년대에 이르러 ‘각희산(角戱山)’로 받아적은 듯하다. 고개 이름인 ‘각희치(角希峙)’는 [가키], [각끼]라는 소리가 중요할 뿐 뜻으로 받아적은 이름임을 반증한다.

조선 중종 때 성현이 쓴 ≪용재총화≫(1504) <제석>조에서 섣달그믐에 궁중과 민간에서 나례 때 방매귀를 하고, “이른 새벽에 그림 그린 종이를 문과 창과 사립문에 붙인다. 그 그림은 처용, 각귀, 종규(악귀를 잡아먹는 귀신) 같은 귀신의 얼굴이나 복두를 쓴 관인이나 투구에 갑옷 차림을 한 장군, 진귀한 보물을 받든 부인 모습이나 닭, 호랑이 그림 따위다.”고 나온다. 정월 초하루 풍습으로, 대문에 붙여 잡귀를 막고 복을 불러들일 요량으로 붙이는 그림을 문배(門排)라고 한다. 문배 그림에 나오는 각귀(角鬼)는 말 그대로 ‘뿔 달린 귀신’으로 악귀를 쫓는 구실을 한다.


배달말 한입 더

≪표준국어대사전≫에 ‘각희’가 나온다. 각희산을 쓴 한자와 꼭 같다. 그대로 옮겨보면 이렇다.


각희(角戲) [1] 고구려 때에, 하류층에서 하던 놀이의 하나. 두 사람이 씨름하듯이 맞붙어 힘을 겨루거나 또는 여러 가지 기예와 활쏘기, 말타기 따위를 겨루었다. =각저. [2] 두 사람이 샅바를 잡고 힘과 재주를 부리어 먼저 넘어뜨리는 것으로 승부를 겨루는 우리 고유의 운동. =씨름.


‘각희’는 ‘각저’나 ‘씨름’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실제로 고구려 무덤으로 ‘각저총’이 있다. 이 무덤 벽화에 <씨름도>가 있다. 어쩌면 각희산은 산봉우리가 서로 겨루듯 우뚝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각희산 #각귀 #쌀개 #볼씨 #방아 #정선군 #땅이름

작가의 이전글허리업